2025년 11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회(이하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단행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우리 의회 민주주의와 책임정치의 본 모습이 텅 비어 있는 의석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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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시위하는 국힘 의원들 앞 지나는 이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 도착해 침묵시위를 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을 지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내란특검팀의 영장청구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서 침묵시위를 했다. 2025.11.4 [국회사진기자단]

(서울=조중동e뉴스) 김혜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4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지만, 제1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 불참 속에 본회의장은 반쪽으로 진행됐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구속영장 청구를 ‘야당 탄압’이라 규정하며 본회의에 입장하지 않았다. 의원들은 본청 로텐더홀 앞에서 검은 마스크를 쓰고 침묵 시위를 벌였고, 가슴에는 ‘근조 자유민주주의’ 문구가 적힌 리본을 달았다.

이 대통령이 국회에 도착하자 일부 의원들은 “범죄자”, “꺼져라” 등의 고성을 외치며 항의했다. 이 대통령이 미소를 보이자 “웃지 마라”는 소리도 터져 나왔다. 대통령은 짧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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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시정연설 빈자리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6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자리가 의원들 불참으로 비어 있다. 2025.11.4

■ “좀 허전하군요”

본회의장 입장 직후, 이재명 대통령은 텅 빈 국민의힘 의원석을 바라보며 “좀 허전하군요”라며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 내내 민주당 의원들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고, ‘이재명’ 연호도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은 22분간의 연설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국민의 삶을 지키고 민생을 복원하는 예산이 되길 바란다”며 신속한 심사를 요청했다.
또한 “비록 입장 차이는 존재하지만, 국민을 위하는 진심만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며 야당의 불참을 안타깝게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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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 (서울=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4일 국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은 채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을 규탄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2025.11.4 [국회사진기자단] photo@yna.co.kr

■ 텅 빈 좌석이 남긴 메시지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의전 불참 이상의 상징을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정부의 예산안을 놓고 대화조차 이어가지 못하는 현실은, 정치 대결이 제도적 논의를 압도하는 현주소를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당의 항의가 정당한 문제 제기일 수 있으나, 본회의를 비운 채로 국민의 삶을 논의할 기회를 놓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여야가 국민 앞에 함께 서는 자리인데, 이번처럼 국회가 비어 있으면 결국 책임정치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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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 지나는 이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 도착해 피켓시위를 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을 지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내란특검팀의 영장청구에 반발하며 야당 탄압 중단을 촉구했다. 2025.11.4 [국회사진기자단]

■ 남은 과제는 ‘정치의 복원’

이번 보이콧은 정부와 국회 사이의 협치 구조가 여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의 “허전하다”는 한마디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대립으로 얼어붙은 국회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국회가 다시 국민의 눈높이에서 토론과 타협의 장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민생 예산을 둘러싼 논의는 또다시 정쟁의 늪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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