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재판중지법’ 논란은 단순한 법안 공방을 넘어,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근간과 국정 운영의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 법안을 ‘국정안정법’으로 포장하며 연내 처리를 예고했을 때, 정국은 순식간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여야는 헌법 해석과 권력의 경계선을 두고 격렬히 맞섰고, 정치권은 그야말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다.
헌법이 던진 질문은 국정 안정인가, 법 앞의 평등인가
이 논란의 본질은 헌법 제84조의 해석에 있다. “대통령은 내란·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민주당은 이 조항을 근거로, 이미 진행 중인 재판 또한 ‘소추’의 연장선에 있으므로 대통령의 재직 기간 동안은 재판을 중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정에 서는 것은 국정 동력을 떨어뜨리고 외교적 결례를 유발한다는 이유였다. 국가의 연속성과 국정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오히려 공익에 부합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곧바로 거센 반론에 부딪혔다. 법조계와 야당은 ‘소추’란 어디까지나 공소 제기를 뜻할 뿐이며, 이미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재판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대통령이라 해서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 앞의 평등’은 헌법 제11조가 명시한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그 원칙을 흔드는 순간 법치의 토대가 무너진다. 재판을 정치의 논리로 멈춰 세우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헌정 질서의 균형을 파괴하는 위험한 시도라는 우려였다.
“방탄입법”이라는 비판, 그리고 국민의 경계심
더불어민주당은 대장동 1심 판결을 “배임죄 조작 기소”로 규정하며 법안 추진의 명분을 쌓으려 했다. 하지만 여론은 냉담했다. ‘국정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기보다, 특정인을 위한 “방탄 입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입법부가 스스로 사법 절차를 멈추게 하는 것은 ‘위인설법(爲人設法)’의 전형으로, 헌법이 금지하는 권력의 사유화를 떠올리게 했다. 결국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이나 헌법소원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했다.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립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중단의 결정, 다행스러운 헌정의 자정작용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실이 “재판중지법은 불필요하다”고 공식 입장을 밝히고, 더불어민주당 역시 법안 처리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후퇴가 아니라, 헌법의 기본 질서를 존중하고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성숙한 선택이었다. 국정의 안정은 법과 원칙의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하며, 정의 없는 안정을 위해 헌법을 흔드는 것은 결코 진정한 안정이 아니다. 이번 중단 결정은 그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이다.
법치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숨결이다
국민은 대통령이든 일반 시민이든 모두 법 앞에 평등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지켜온 법치의 신념이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이 중요하듯, 사법 정의의 실현도 한 치의 예외 없이 존중되어야 한다. 법이 흔들리면 정의가 무너지고, 정의가 무너지면 국정의 기반 또한 사라진다.
‘재판중지법’ 논란은 우리 사회에 깊은 질문을 던졌다. 권력의 안정보다 중요한 것은 법의 신뢰이며, 정치의 유불리보다 앞서는 것은 헌법의 존엄성이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 준 것이다.
이번 중단 결정이 일시적 정치 판단에 머물지 않고, 헌법과 법치주의를 지켜내려는 국가적 자정 능력의 발현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 법 위에 군림하는 정치가 아니라, 법 아래 겸손히 서는 정치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 상식이 지켜졌기에, 우리는 아직 희망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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