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부를 거머쥔 '완벽주의자' 월트 디즈니는 왜 불행했나
미국 임상심리학자가 쓴 신간 '유연한 완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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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버전의 백설공주 [UPI=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는 미국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의 첫 장편영화다. 디즈니 창업주였던 월트 디즈니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600명의 아티스트를 드로잉과 채색 작업에 투입하며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밤낮없이 그림을 그렸지만 '눈높은' 창업주를 한 번에 만족시킬 순 없었다. 아티스트들은 몇 번이고 같은 그림을 다시 그려야 했다. 까다로운 월트 디즈니의 감식안 탓에 제작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애초 25만달러 수준에서 그 여섯 배인 150만달러 이상으로 급증했다. 디즈니사는 은행에 100만달러라는 막대한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개봉하자 다행히 관객들이 줄을 이었다. 망할 뻔했던 디즈니사는 이 영화로 할리우드에서 단단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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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한 장면 [자료사진]

회사는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창업주는 불운했다. 디즈니사가 창조한 환상과 순수함이 가득한 세상, 별을 바라보며 꿈을 이루는 세계는 그가 사는 현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월트 디즈니는 지독히 불안정한 현실 세계에서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으며 품질관리자로서 스태프들에게 엄격했다. 성공의 후과는 혹독했다. 주변에 그 누구도 없었다. 당시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는 '이 기발한 인물이 의기소침하고 완고한 상태로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 문제를 회피하며 장난감 기차로 소일하는 모습을 보니 서글퍼졌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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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연합뉴스]

20년 경력의 임상심리학자인 엘런 헨드릭스는 신간 '유연한 완벽주의자'(어크로스)에서 월트 디즈니가 완벽주의자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디즈니나 스티브 잡스처럼 완벽주의자는 대단한 일을 성취하곤 하지만, 개인적 삶까지 행복한 건 아니라고 부연한다. 완벽주의가 심해질 경우 우울증, 섭식 장애, 강박 장애와 같은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다.

책에 따르면 완벽주의자는 자기비판 성향이 강하다.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사소한 결점만 생겨도 자신이 실패했다고 여긴다. 완전히 성공하거나 완전히 실패했다고 여기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사고방식을 보이기도 한다. 다음에 잘해보자는 생각 대신 가혹한 비난으로 자신을 몰아붙이고, 기준을 충족했을 때는 애초에 기준이 높지 않았다며 이룩한 성과를 깎아내린다. 저자는 이런 자기비판이 결국 당사자를 지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득보다는 손해가 많은 도구"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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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EPA=연합뉴스]

미루기도 완벽주의자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완벽주의자의 미루기는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야 안 하는 게 낫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한다. 이런 '미루기'는 자기비판을 강화하기도 한다. '왜 난 항상 이 모양이지?'라는 비판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해 다시 미루기에 빠져드는 악순환을 부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실수 곱씹기, 남과의 비교, 자신과 성과를 동일시하기 등 완벽주의자는 다양한 심리적 특징을 보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면서 "완벽주의는 우리를 월트 디즈니의 길, 즉 고립과 탈진 만성 불만족으로 이끌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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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이미지 [어크로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렇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일은 일이고, 성과는 성과일 뿐 일이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현실적인 기준이 아닌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기준, 그리고 표면적인 결과가 아닌 내가 진정으로 중시하는 가치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고 곁들인다. 아울러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을 행함에 있어 완벽주의를 추구하되 좀 더 유연한 생각과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실수는 삶의 일부다. 후회는 인간관계를 맺으며 치러야 할 대가다. 누구나 일을 망쳐본 적이 있다. 누구나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다. 누구나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적이 있다. 여전히 높은 기대치를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으로 살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440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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