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니스 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 코트다쥐르(푸른 해변가)를 달리면, 지중해의 햇살이 유난히 반짝이는 세계에서 바티칸 다음으로 작은 나라 모나코에 닿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 손바닥만 한 이 나라의 언덕 위로 펼쳐진 모나코 구시가지는 동화 속 무대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그곳엔 아직도 한 여인의 이름이 바람처럼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그레이스 켈리, 할리우드의 영원한 여신이자 모나코의 전설이 된 왕비다.
모나코 성당안에 있는 그레이스 켈리 왕비 묘비
 
- 동화의 끝에서 비극의 시작
微小國家중 하나인 이 나라는 F1의 질주와 몬테카를로 카지노의 황금빛 섬광으로 유명하지만, 그 모든 화려함 뒤에는 단 한 명의 여인, 세기의 배우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이번 모나코 여행은 부와 호사를 탐하는 여정이 아니었다. 필자는 '할리우드의 여왕'에서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녀의 화려한 삶 속에 가려진 그늘진 인생의 발자취를 쫓았다.
모나코 여행의 시작은 모나코 왕궁(Monaco-Ville), 왕실이 있는 '바위(Le Rocher)'였다. 중세 요새의 위용을 간직한 모나코 대공궁 광장에 서니, 아래로는 고급 요트들이 즐비한 항구가, 위로는 그리말디 왕가의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매일 정오의 근위병 교대식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엄숙함을 보여준다.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운 좋게도 그 멋진 왕궁 근위병 교대식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이내 무거운 발걸음으로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어우러진 순백색 대성당 내부에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 속에서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의 묘비가 나란히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곳이 그들만의 세기의 결혼식이 열렸던 곳이자, 그녀의 영원한 안식처이기도 하다. 화려한 결혼식의 환희와 비극적인 죽음 후의 침묵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필자는 할리우드 스타로서의 삶을 완전히 포기해야 했던 한 여인의 고독과 왕실 생활의 무게를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묘비에 있는 '그라티아 파트리샤'라는 라틴어 이름만이 그녀의 모든 삶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모나코왕궁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몬테카를로로 향하면, 곧바로 현실의 화려함이 눈앞에 펼쳐진다.
파리 오페라 하우스 건축가가 설계한 카지노는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며, 내부의 냉정한 도박판과 외관의 호화로움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곳은 그레이스 왕비가 모나코의 국력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지만, 정작 그녀는 화려한 사교계의 중심에서 고립감을 느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것이 허망하고 인생자체가 一場春夢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절정기에 영화 대신 왕관을 택했다. 왕궁의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카메라 앞의 그레이스 켈리가 아니라, 예절과 의무 속의 ‘그레이스 왕비’로 살아야만 했다. 자유로운 배우에서 ‘왕국의 얼굴’이 된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원했던 대사를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1982년 52세나이로 , 막내딸 스테파니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다 산길 낭떠러지에서 차가 추락하며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그때의 도로는 지금도 ‘그레이스 도로(Route de la Princesse Grace)’로 불린다. 그녀를 추모하며 꽃을 바치는 이들 중엔, 영화팬, 현지인, 그리고 단 한 번 그녀의 미소를 스크린에서 본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말한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이곳의 햇살은 여전히 그녀 같다.”
모나코 항구가 보이는 곳을 배경으로 오른쪽 성벽에 선 필자
 
- 모나코의 바람이 전하는 것
화려하고 값비싼 요트가 즐비하게 정박해 있는 모나코 항구를 내려다보며 동화 속 왕비가 아닌 한 명의 평범한 여인으로서 짊어졌을 삶의 무게를 상상해 보았다. 그녀의 마지막 발자취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끝났다는 사실은 우리모두로 하여금 아직까지도 그레이스 켈리를 잊지 못하게 하고 있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그녀가 막내딸과 함께 절벽 아래로 추락했던 모나코 근교의 급커브길은 관광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길은 이 완벽해 보이던 신데렐라 이야기에 찍힌 지울 수 없는 비극의 마침표와 같다.
모나코는 여전히 아름답고 호화롭지만, 그레이스 켈리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여정은 우리에게 '완벽한 행복'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깨달음을 새삼 안겨주었다. 그녀는 동화 속 왕비처럼 살다 갔지만, 그 끝은 현실의 가장 어두운 단면이었다.
그레이스 켈리가 꿈꿨던 인생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까. 자유롭고 찬란하지만, 그 안에 고독이 깃든 삶. 겉으로 모나코는 여전히 화려함으로 관광객을 유혹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한 여인의 슬픔과 강인함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남긴 것은 왕관도, 영화도 아닌 ‘품격’이었다.
모나코의 햇살 아래, 나는 문득 그녀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평범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다.” 왕비의 흔적을 따라 모나코왕궁 주변 산책길을 걷는 것도 황홀한 풍광과 함께 나름 힐링이 되는 것 같다. 그런가하면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장면을 함께 떠올려보는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지금도 현실과 스크린이 교차하는 모나코 여행의 순간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고 기억나는것은 그만큼 모나코가 매력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모든것이 푸르렀고,모든것이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장 프랑소와 모리스'의 샹송을 들으며 다시금 모나코의 진한 매력에 흠뻑 빠져본다.
 
 
 
 
 
 
 
 
 
 
 
 
 
 
 
 
<저작권자(c) 조중동e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