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조중동e뉴스-김혜빈] 2025년 추석 아침,전국적으로 비가 예보 된 아래 추석날의 풍경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미 인천공항은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로 역대급 인파를 이루며 북새통을 이루는 반면, 한때 민족 대이동의 종착지였던 지방 농촌 마을은 오가는 차량조차 드물게 한산한 모습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던 풍요로운 명절의 모습은 이제 정말 그리운 전설 속 이야기가 되어가는 것일까요. 2025년 추석은 우리에게 '가족'과 '고향'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귀성 없는 명절'
이번 10일간의 황금연휴는 변화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 연휴 고속도로 통행량은 총량 면에서는 높지만, 전통적인 귀성·귀경 방향의 집중도는 예년에 비해 현저히 완화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서울 시내 주요 호텔들은 '추석 패키지' 예약이 일찌감치 마감됐습니다. 자녀의 집을 찾아 도시로 올라온 '역귀성' 부모님들이 명절을 보내는 새로운 풍경입니다. 굳이 붐비는 길을 뚫고 내려가는 대신, 부모님을 도시로 모셔와 편안한 휴식과 외식을 함께 즐기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입니다.
직장인 김선영(38)씨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의 고생과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더는 대신, 올해는 양가 부모님을 서울로 모셨다"며 "호텔에서 편히 쉬시고 함께 공연도 보니 모두가 만족하는 명절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의무'가 된 명절, 탈출구가 된 연휴
왜 사람들은 더 이상 고향을 찾지 않을까요? 전문가들은 가족 구조의 변화와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을 핵심 원인으로 꼽습니다.
1~2인 가구가 전체의 60%를 넘어선 지금, 수십 명이 모이던 대가족 중심의 명절 문화는 현실과 맞지 않게 됐습니다. 여기에 명절 음식 준비와 설거지 등 여성에게 집중되는 가사 노동의 부담, 이른바 '명절 증후군'에 대한 피로감도 세대를 불문하고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많은 이들에게 명절은 '반가운 만남'이 아닌 '피곤한 의무'가 되었고, 긴 연휴는 이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탈출구'가 된 셈입니다.
"내려온다는 전화도 없네"…소멸 위기 농촌의 쓸쓸한 추석
이러한 변화의 그늘은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 지역에 가장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전남의 한 마을 이장은 "마을 전체 50가구 중 절반 이상이 독거노인인데, 이번 추석에 자식들이 내려온 집은 서너 집에 불과하다"며 "예전엔 북적이던 마을회관도 텅 비었고, 서로 안부 전화로 명절을 대신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쓸쓸함을 전했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이 내심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자녀들의 고충을 이해하기에 오지 말라고 손사래 치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이제 추석은 더 이상 하나의 통일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여행의 시작이고, 누군가에게는 고된 의무에서의 해방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풍요와 나눔의 상징이었던 '한가위'가 각자도생의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된 2025년의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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