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를 만들겠다.”
한 정치인의 발언은 언뜻 대담한 비전처럼 들리지만,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더 큰 의문을 남긴다. 과연 대학의 숫자를 늘린다고 해서 우리 교육의 뿌리 깊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병은 명문대의 부족이 아니다.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이미 공정한 출발선은 무너졌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들의 가능성이 달라지는 사회에서 서울대가 열 개가 되든 스무 개가 되든, 진정한 기회의 평등은 찾아오기 어렵다. 대학 간판이 늘어난다고 해서 교육의 사다리가 다시 세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입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사교육 부담은 더 커질 뿐이다.

지역 발전을 위해 서울대급 대학을 세우겠다는 주장도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대학은 단순히 사람을 끌어 모으는 간판이 아니라, 지식을 창출하고 인재를 길러내는 공동체이다. 지역의 균형 발전은 대학의 수가 아니라, 지역의 특성과 필요에 맞는 다양한 교육 모델을 어떻게 육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울대 몇 개’가 아니다. 세계와 당당히 겨룰 수 있는 단 한 개의 진짜 대학을 키우는 비전이다.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창의적인 학문 풍토와 꾸준한 연구 지원, 사회적 신뢰 속에서 길러지는 대학 말이다. 서울대보다 열 배, 백 배 더 우수한 대학 하나가 탄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서울대 10개를 세우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성취일 것이다.

결국 교육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모든 아이가 공정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는가? 다양한 재능이 존중받고, 교실이 다시 배움의 즐거움으로 가득할 수 있는가? 교육의 본질이 간판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이끌 힘이 될 수 있는가?

서울대 10개보다 더 위대한 일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꿈을 지켜내는 일이다. 배움이 차별 없는 희망이 되는 나라, 아이들의 꿈이 꺾이지 않는 나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미래 세대에 남겨야 할 가장 큰 유산이다.

류수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제7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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