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부부의 자유를 향한 목숨 건 여정…'주인 노예 남편 아내'
美 노예탈출 실화 바탕 논픽션…철저한 고증에 극적 재미 더해

한국계 미국 작가 우일연, 한국계 최초로 퓰리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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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노예 남편 아내 [드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1848년 12월 미국 남부 조지아주 메이컨에서 한 흑인 노예 부부가 목숨을 건 여행에 나선다.

노예제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와 '존엄'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부부의 이름은 윌리엄 크래프트와 엘렌 크래프트.

이들의 탈출 계획은 참으로 배짱이 두둑했다.

피부색이 밝은 아내 엘렌은 머리를 자르고 녹색 안경을 써서 '병약한 백인 남성 주인'으로 변장하고, 남편 윌리엄은 그를 보필하는 '충직한 흑인 노예' 행세를 했다.

그런 뒤 그들은 당당히 기차와 증기선, 최고급 역마차에 올라탔다. 가장 대담하게, 가장 백인답게 행동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계속 찾아온다. 기차 출발을 앞두고 그들을 '소유'했던 주인이 나타나고, 악명 높은 노예상까지 맞닥뜨린다.

과연 이들은 위기를 넘어 자유의 땅에 도달할 수 있을까.

크래프트 부부의 탈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 '주인 노예 남편 아내'(드롬)가 국내 번역 출간됐다.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묻혀 있던 이 이야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작가는 한국계 미국 작가인 우일연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24년 한국계 최초로 도서 부문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다.

퓰리처상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전미도서상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이다.

한국계 작가가 노예제에 대한 소설을 쓴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그동안 미국 역사·문학계에서 노예제 문제는 백인 주류 역사학자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의 성역과도 같은 분야로 여겨졌다.

작가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섬세하고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역사를 복원해낸다.

크래프트 부부를 예속한 가족사부터 당시 미국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병폐까지를 깊고 폭넓게 그려낸다.

특히 페이지마다 펼쳐지는 장면들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단 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노예들은 재산처럼 사고 팔렸으며, 가족과 고통스러운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규율을 어기면 잔혹한 고문을 받았으며, 여성은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잔혹한 현실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할 때, 그 무관심이 얼마나 잔인한 폭력의 구조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서사의 힘이 매력적인 감동 실화다.

온갖 의심의 눈을 피해 숨죽이며 나아가는 두 사람의 여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억압에 맞선 투쟁의 기록이자 희망과 사랑의 기록으로서 큰 울림을 선사한다.

작가는 한국인 독자에게 건네는 말에서 "이 이야기는 미국 이상의 무언가를 다루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보편적 주제"라며 "억압을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불의에 대항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강동혁 옮김. 688쪽.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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