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탁기


-초고령사회, 간병혁명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당시 산요전기가 선보였던 '울트라소닉 배스(Ultrasonic Bath)'는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사람이 기계 속에 앉아 있으면 물살이 몸을 씻겨준다는 발상은 당시로선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기술은 그저 '씻겨주는 기계'를 넘어 우리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꿀 '라이프스타일 가전'으로 다시 돌아왔다.

- Washing에서 Care 로 진화

최근 일본 기업 사이언스(Science)가 공개한 '미라이(未來) 인간 세탁기'는 과거의 원시적인 자동 목욕기와는 궤를 달리한다.

핵심은 '인공지능(AI)'과 '초미세 기포 기술'의 결합이다. 단순히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육안으로 확인조차 어려운 미세 거품이 모공 속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노폐물을 제거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기계가 사용자의 신체를 대하는 방식이다. 등 뒤에 장착된 센서는 사용자의 심박수와 자율신경 상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한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면 AI는 즉각적으로 조명의 조도를 낮추고, 캡슐 내부 스크린에 평온한 영상을 띄우며, 수압을 부드럽게 조절한다. 이제 목욕은 위생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심리 치료가 된다.

- 초고령 사회의 필수가전

인간 세탁기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닌 '미래 가전'으로 불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인구 구조의 변화에 있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이 기술은 '간병 혁명'으로 읽힌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목욕은 가장 위험하고 힘든 일과 중 하나다. 간병인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피수발자에게 목욕은 때로 수치심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스스로 기계에 들어가 자율성을 유지하며 씻을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편리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문제다. 간병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 세탁기의 등장은 집이라는 공간의 구조적 변화도 예고한다.

그동안 욕실은 타일과 수전으로 구성된 '습하고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건조까지 완벽히 처리하는 캡슐형 가전이 보급된다면, 욕실은 거실의 한복판이나 침실 옆으로 이동할 수 있다.

물을 사용하는 구역(Wet zone)과 휴식을 취하는 구역(Dry zone)의 경계가 무너지며, 욕실은 집 안에서 가장 고도화된 '헬스케어 센터'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 기계가 주는 인간적인 위로

물론 대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과 거대한 부피는 대중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세탁기가 가사 노동에서 여성을 해방했듯, 인간 세탁기는 간병의 고통과 목욕의 번거로움에서 인류를 해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몸을 직접 만지는 시대, 인간 세탁기는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다. 그것은 고독한 현대인에게는 AI가 제공하는 따뜻한 위로이며, 누군가에게는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하는 기술적 배려다.

미래의 욕실에서 우리는 단지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스트레스와 노화의 고단함을 헹궈내게 될 것이다.

김창권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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