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끝난 국면에 매달리는 정치

국민의힘은 여전히 상황 인식에서 한 박자씩 늦다. 이미 끝난 국면에 매달리고, 식은 감정의 잔불을 다시 흔든다. 그래서 늘 뒷북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뒷북이 촘촘한 전략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야당이 되었음에도 말투와 자세는 여전히 집권 시절에 머물러 있다. 권력은 내려놓았으나 사고방식은 아직 청와대에 남겨 놓았다.

II. 주도권 없는 ‘사건 대응 정당’

국민의힘은 이제 야당이라기보다 사건 대응 정당에 가깝다. 민주당이 던진 이슈를 받아 적고, 그 이슈에 분노를 반복적으로 외친다. 정치의 의제는 늘 상대가 정하고, 국민의힘은 반응만 한다. 분노, 규탄, 기자회견, 성명서가 반복될 뿐이다. 주도권 없는 정치는 견제가 아니라 소음이 된다.

III. 분노는 있는데 설계가 없다

분노의 정당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이건 잘못됐다”라는 말도 틀리지는 않지만 언제나 거기까지다. 국민은 묻는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분노 뒤에 설계도가 보이지 않는다. 화는 넘치지만, 방법과 책임의 언어는 없다. 분노가 정치가 되지 못하고 감정 소비로 끝난다.

IV. 구호는 넘치고 계산은 실종

야당의 출발점은 신뢰다. 잘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맡겨도 잘 굴러갈 것이라는 구조적 신뢰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여전히 추상어에 머문다. 공정·자유·민주를 말하지만, 숫자와 제도, 로드맵이 없다. 예를 들어 재정 파탄을 외치면서도 몇 년 뒤 국가채무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계산서는 제시하지 않는다.

V. 축적되지 않는 인물 정치

인물 전략은 더 가볍다. 이슈가 터지면 얼굴 하나 세우고, 바람이 잦아들면 곧바로 폐기한다. 메시지도 캠페인도 남지 않는다. 정치를 단타 게임처럼 운영한다. 그러나 선거는 연속 안타로 점수를 쌓는 경기다. 스타 한 명으로 판을 뒤집겠다는 발상은 이미 구시대적이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도 정치 경험이 없어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

VI. 지지층 정치의 한계

지지층의 박수를 정치 성과로 착각하는 것도 문제다. 그리고 선거를 결정하는 것은, 늘 중도와 침묵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당의 언어는 점점 거칠어지고 설명은 줄어든다. 야당의 언어는 설득이어야 하는데, 아직도 훈계와 단정이 앞선다. 권력이 이미 내려왔는데 말투는 그대로다.

VII. 내부 분열을 공개적 중계

당내 갈등을 생중계하는 정치는 상대에게 주는 무상 선물이다. 계파와 노선, 감정싸움이 실시간으로 노출될수록 야당은 스스로 약해진다. 국민에게는 하나의 언어만 전달돼야 한다. 끝없는 내부 다툼은 정치가 아니라 자해다. 한마디로 나 잘난 박사가 넘친다. 민주당을 보라 그 하자투성이도 단결력으로 대통령을 만드는 것을

VIII. 정권 붕괴를 기다리는 무책임

정권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태도 역시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 국정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현 정권은 임기를 채울 것이다. 탄핵과 사퇴를 외칠 것이 아니라, 국정이 흔들릴수록 국가를 어떻게 지킬지를 말해야 한다. 개인 공격이 아니라 제도 붕괴의 경로를 설명해야 한다.

IX. 싸움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싸움에도 전략이 있다. 매일 싸울 필요는 없다. 헌정 질서, 경제·재정, 안보·외교 같은 국가의 뼈대에만 집중해야 한다. 나머지 이슈에는 침묵할 줄 아는 절제도 필요하다. 모든 공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팀은 결국 지치고 국민은 산만해하고 어지럽다.

X. 영웅이 아니라 팀의 문제

지금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팀이다. 대통령 후보 만들기부터 멈춰야 한다. 총리 후보군, 경제·외교·사회 각 분야를 책임질 인재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 국민은 묻는다.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누구와 나라를 운영할 것인가. 그 질문에 답이 없다.

XI. 정권 교체는 국민의 선택

야당의 목표는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있지 않다. 국민이 정권 교체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소리는 크지만,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한두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고 각자 따로 논다. 소총수 소대 수준의 준비로는 국가 운영을 맡길 수 없다. 이대로 뒷북만 친다면, 몇 년 뒤에도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기회는 있었지만, 또 놓쳤다고.

고무열 교수(안전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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