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완벽한 운전자는 없고, 순간의 방심이나 판단 착오로 예상치 못한 접촉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크기가 아니라, 그 이후를 대하는 태도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야말로 성숙한 시민의식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 후진 중 살짝 닿은 접촉사고다. 사고 직후 상대방은 “별 피해가 없는 것 같으니 그냥 가도 될 것 같다”고 말했고, 명함만을 주고받으며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차량 외관상 파손은 보이지 않았고, 서로의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나 두 시간 후,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물은 물론 대인사고까지 신고했다는 연락이 왔다.
사고로 인한 실제 손해가 있다면 당연히 배상해야 한다. 그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보험 처리를 위해 파손 부위를 가까이에서 촬영한 사진을 요청했다. 이는 보험사 접수에 필요한 최소한의 절차이자,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상식적인 요청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협조가 아닌 단절이었다. 더 이상의 소통은 거부되었고, 판단을 문제 삼는다는 이유로 대화의 문은 닫혔다.
여기서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보험은 피해 회복을 위한 제도이지, 이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경미한 접촉에 대해 실제 손해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인적 피해까지 주장하는 행위는, 제도의 취지를 왜곡하는 ‘절도’나 '사기'에 가깝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선의의 보험 가입자 전체에게 부담으로 돌아온다. 보험료 인상이라는 형태로, 사회 전체가 그 비용을 나누어 떠안게 되는 것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법과 제도를 ‘최대 보상’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신뢰의 붕괴다. 작은 사고 하나에도 서로를 의심하고, 법과 제도를 ‘최대 보상’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게 된다면, 사회는 점점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양심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잠시 접어두는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다.
사고는 우연이지만, 그 이후의 선택은 의지다.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과하지 않게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절제. 그것이 성숙한 시민의 모습이다. 작은 접촉을 계기로 큰 보상을 노리는 계산이 아니라, 작은 불편을 서로 이해로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길 바란다.
법보다 앞서는 것은 양심이고, 보상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작은 사고 앞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태도가,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저작권자(c) 조중동e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