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멈춰 설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더 중요하다."고 강변하는 필자(앞줄 중앙)
- 잠깐 멈춰 설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더 중요하다
술을 마신다고들 말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술은 ‘먹는’ 것에 가깝다. 허기를 채우듯 마음의 빈틈을 달래고, 하루의 굴곡을 삼키며 삶을 소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술자리는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관과 태도가 자연스레 드러나는 작은 사회다.
문득 돌아보니, 돈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신중하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이들 가운데, 진정한 부자 중에 태극기냐, 문빠냐, 극좌냐, 극우냐 하며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대체로 어느 진영에도 과도하게 몸을 싣지 않는다. 말이 적고, 표정이 느긋하며, 판단은 빠르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반면 극단으로 치닫는 목소리는 주로 삶이 팍팍한 곳에서 커진다. 먹고사는 문제가 늘 발목을 잡고, 내일에 대한 불안이 오늘을 잠식할 때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그 기대가 신념이 되고, 신념이 분노로 바뀌면 극단은 하나의 피난처가 된다. 이해받고 싶고, 소속되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이 그렇게 방향을 잃는다.
- 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계급이고, 권력이다
돈이 있다는 것은 선택지가 있다는 뜻이고,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부자들에게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비밀스러운 음모의 공간이 아니라, 각자의 이해관계가 조용히 조율되는 식탁이다. 먹을 것이 있고, 나눌 것이 있으니 사람은 자연스레 모여든다. 관계는 유지되고, 친구는 끊이지 않는다. 인생을 ‘투쟁’이 아니라 ‘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 평생 벌기만 하다 써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다. 그들은 부자일 수는 있어도, 부유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돈은 삶을 확장시키라고 있는 것인데, 오히려 삶을 가두는 족쇄가 되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형벌이다.
돈과 권력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돈을 대하는 태도다. 인생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극단에 서지 않는다. 흑백으로 세상을 나누지 않는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먹고살 만하기 때문이다.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은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즐겁고 단단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약간의 재산, 그리고 남들에게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베푼다는 것은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 관심, 따뜻한 말 한마디도 충분한 나눔이 된다. 그렇게 흘려보낸 것들은 결국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오늘 집 앞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화려한 불빛은 잠시지만, 그 불빛을 바라보며 잠깐 멈춰 설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생도 그렇다. 극단의 소음 속에서 고함치기보다, 조용한 식탁에 둘러앉아 삶을 천천히 씹어 삼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이 아닐까.
술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급하게 들이키지 말고, 천천히 씹어가며 음미할 때 비로소 그 맛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를 갖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짜 부유함일 것이다.
<박상희 한국농어촌희망재단 이사장/ 건국대학교 총동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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