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배구조 잔혹사,깜깜이 인선
금융은 신뢰를 먹고 산다. 하지만 최근 우리 금융권이 보여주는 지배구조의 민낯은 신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매번 반복되는 ‘깜깜이 인선’과 ‘금융지주회장·은행장 돌려막기’ 논란은 한국 금융의 수준을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 가둬두고 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2025년 말, 우리는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금융기관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 베일에 싸인 금융지주회장 승계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선임 절차가 시작될 때마다 금융기관은 안갯속을 걷는 듯한 피로감을 느낀다. 후보군(Long-list) 선정 기준은 무엇인지, 어떤 역량 평가를 거쳤는지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보안에 부쳐진다. 투명성이 결여된 밀실 행정은 필연적으로 ‘낙하산’ 혹은 ‘지주회장의 의중’이라는 의구심을 낳는다.
최근 금융감독 당국이 승계 절차 조기 개시와 후보군 상시 관리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벼락치기식 인선’이 경영의 연속성을 해치고 리스크를 키운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는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이어야 한다. 후보자의 전문성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인선 결과도 시장의 박수를 받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돌려막기’ 관행이다. 지주 회장이 임기를 마치고 계열사 은행장으로 내려가거나, 은행장이 지주 회장으로 올라가는 ‘교차 선임’은 인력의 선순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관행에 가깝다. 특정 인물들이 요직을 독점하며 형성된 이너서클은 외부의 혁신적인 목소리를 차단한다. 사외이사들 또한 경영진을 견제하기보다 연임을 돕는 ‘거수기’나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25년 들어 5대 금융지주의 안건 찬성률이 여전히 100%에 가깝다는 수치는 우리 이사회가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그대로 방증해 주고 있다. 물론 정부당국의 강한 개입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인사 가이드라인을 촘촘히 짜는 것이 자칫 ‘新관치’로 흘러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관치 금융의 역사가 깊은 한국 사회에서 당국의 개입은 양날의 검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금융사가 스스로 투명한 지배구조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규제의 칼날은 더 깊숙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올해 본격 시행된 ‘책무구조도’는 그 시작일 뿐이다. 이제는 금융사 스스로가 ‘깜깜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인선 과정의 모든 단계를 주주와 시장 앞에 정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금융기관은 사기업인 동시에 공적 자금이 투입될 수 있는 공공적 성격을 지닌다.
CEO 한 명의 장기 집권이나 이너서클의 이익이 기업의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구조는 결국 금융 사고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제 ‘돌려막기’라는 단어 대신 ‘공정한 경쟁’이라는 단어가 금융권 인사 뉴스에 등장해야 한다.
폐쇄적인 지배구조를 깨고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승계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 그것이 2026년을 앞둔 한국 금융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혁신 과제라는 점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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