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궤변 뒤에 숨은 본질은?
최근 대한민국에 ‘저속 노화’ 열풍을 일으켰던 현대아산병원 정희원 교수가 사생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중은 그가 제시한 렌틸콩 식단에 열광했고, 느리게 나이 드는 삶의 철학에 쫑끗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전직 동료와의 법적 공방 과정에서 나온 “신체 접촉은 있었으나 육체관계는 없었다”는 발언은, 그가 쌓아온 지적이고 도덕적인 이미지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궤변’으로 사회전반에 조롱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
정 교수의 이번 발언은 과거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숱한 회피형 화법들을 떠올리게 한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사랑하지만, 불륜은 아니다”라는 식의 논리는 대중의 지성을 송두리째 기만하는 전형적인 수사법이다.
동료와의 사적 공간 방문과 신체 접촉을 인정하면서도 특정 행위의 유무를 따지는 모습은, 그가 그토록 강조해온 ‘절제’와 ‘자기 통제’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대중은 그에게 완벽한 성인군자를 기대한 것이 아니다. 다만, 본인이 설파한 ‘건강하고 바른 삶’의 태도가 삶의 궤적과 일치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저속한 노화’와 ‘초고속 추락’
정희원 교수는 단순한 의사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였다. 그의 말 한마디에 유통업계의 잡곡 매출이 출렁였고, 그의 식단은 현대인의 불안을 잠재우는 복음과도 같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구설수는 그가 쌓아 올린 ‘건조하고 담백한 지성’의 가면을 벗겨냈다.
특히 고소 과정에서 드러난 폭로전은 ‘노화를 늦추는 우아한 삶’과는 거리가 먼, 인간사회의 가장 소란스럽고 저속적인 갈등의 형태를 띠고 있다. 스토킹과 공갈미수를 주장하는 정 교수와 성적 요구를 주장하는 상대측의 진실 공방은 이미 법정으로 넘어갔지만, 도덕적 심판대 위에서 그의 이미지는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 지식의 권위와 도덕적 책임
현대 사회에서 전문가의 권위는 단순히 학위나 논문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중은 전문가의 삶이 그가 전파하는 가치와 일치할 때 비로소 그 권위를 승인한다.
‘저속 노화’를 통해 몸의 염증을 줄이라던 그가, 정작 본인의 삶에서는 대중의 마음속에 거대한 ‘정서적 염증’을 유발한 꼴이다.
한마디로 저속한 노화라고나 할까. 그의 발언이 법적으로 어떤 결론이 나든, “접촉은 했으나 관계는 없었다”는 궤변은 오랫동안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복잡한 대사 원리를 설명하던 명석한 두뇌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선택한 가장 비겁한 언어적 도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목격하고 있다. 아무리 몸의 노화를 늦춘다 해도, 신뢰의 노화는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타인의 공격이 아니라, 스스로 내뱉은 구차한 변명이라는 사실을 정교수는 지금이라도 새삼 알았으면 한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치관련 칼럼의 경우에는 본 칼럼은 조중동 e뉴스 의견과는 별개의 견해입니다"
<저작권자(c) 조중동e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