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윤석화


연극배우 윤석화가 우리 곁을 떠났다. 뇌종양이라는 가혹한 병마와 싸우면서도 끝내 무대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배우, 향년 69세였다. 그의 부고는 단순한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한 시대의 연극 정신이 조용히 막을 내렸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다가온다.

윤석화는 ‘연극배우’라는 단어가 지금보다 훨씬 무겁고 고단했던 시절을 온몸으로 건너온 1세대 배우였다.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이후 그는 화려함보다는 치열함으로, 유명세보다는 밀도로 무대를 채워왔다.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기는 언제나 인간의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했고 관객에게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무대는 늘 진지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았고, 관객을 설득하려 들지도 않았다. 대신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꺼내 보였다. 그래서 윤석화의 연기를 본 관객은 박수보다 먼저 침묵하게 되었고, 극장을 나선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남긴 연기의 힘이었다.

2022년, 악성 뇌종양이라는 진단은 누구에게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을 만큼 가혹한 선고였다. 그러나 윤석화는 투병 속에서도 ‘배우’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내려놓지 않았다. 병을 숨기지 않았고, 삶을 미화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2023년 연극 ‘토카타’에 우정 출연하며 무대에 다시 섰다. 그것은 복귀라기보다, 끝까지 배우로 살겠다는 조용한 선언이었다.

윤석화의 삶이 특별한 이유는 성공이나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만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연극처럼 치열하게 살아냈다. 아프면서도 연기했고, 힘들면서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관객이 있는 곳’에서 숨 쉬기를 원했던 배우였다.

오늘 연극계와 관객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크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안다. 윤석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한국 연극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다는 사실을 안다. 그의 목소리, 그의 침묵, 그의 눈빛은 앞으로도 수많은 배우들에게 질문이 되고 기준이 될 것이다.

무대 위에서 생을 완성한 배우, 그 이름은 윤석화였다

이제 고통 없는 곳에서, 더 이상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온 동시대인으로서 마지막 박수를 보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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