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법을 등에 업고 위기를 핑계로 헌법을 유보하려 들 때 가장 비열하고 위험하다. 탄핵과 내란이라 우기는 상황, 그리고 정권 핵심을 겨냥한 사법 리스크가 겹친 지금의 국면에서, 여당과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일련의 입법은 더 이상 개혁이라는 말로 포장될 수 없다.

이것은 공격은 최대의 방어라는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보존을 위한 입법이며, 책임을 피하고자 국가의 기본 질서를 희생시키는 선택이다.

Ⅰ. 형사소송법 개정

수사 무력화는 우연이 아니다. 헌법 제12조가 보장하는 적법절차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쇄적으로 수사와 재판의 문턱에 서 있는 시점에, 직접 수사를 약화하는 개정이 추진됐다.

이는 시기의 문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말한 효과적 수사 의무를 정면으로 거부하면서까지, 왜 지금이었는가. 답은 단순하다. 권력에서 불리한 수사를 늦추고 흐리기 위해서다.

Ⅱ. 검찰청법 개정

여당이 견제를 제거하는 방식은 헌법 제7조의 정치적 중립은 권력이 손을 떼야 성립한다. 그러나 여당은 검찰의 손발을 묶는 동시에, 정치가 수사의 시작과 끝을 둘러싸는 구조를 만들었다.

탄핵 정국에서 이는 치명적이다. 검찰은 더 이상 권력을 향한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없게 된다. 워터게이트 이후 미국 정치가 배운 교훈을, 한국의 집권 세력은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다.

Ⅲ. 공수처 권한 확대

선택적 정의를 제도화하려 한다. 공수처는 이미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여당은 통제 장치 보강이 아니라 권한 확대를 선택했다. 내란이라는 정치적 프레임과 결합한 수사권은, 누구를 먼저 겨누는가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는 구조를 만들려 한다.

헌법 제11조의 평등은 이 지점에서 붕괴한다.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반부패 기구가 정권의 칼로 변질된 과정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의 선택은 그 길을 그대로 답습했다.

Ⅳ. 판사·검사 징계 완화

판결을 향한 노골적 경고는 사법 리스크가 실제 재판정에서 다퉈지는 순간, 징계와 탄핵의 문턱을 낮추는 입법은 메시지가 된다. 판결의 대가를 생각하라는 경고다. 헌법 제103조는 이 상황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여당은 사법부 독립을 제도로 보장하기는커녕, 압박의 수단으로 재편하고 있다. 유럽인권재판소가 반복해 경고한 최악의 시나리오다.

Ⅴ. 재판 지연 절차

시간을 무기로 삼는다. 반복적 이의신청과 기록 과잉은 무죄추정의 보장이 아니라 시간 벌기다. 헌법 제27조가 요구하는 신속한 재판은 유명무실해지고, 유력 피의자는 시간 속으로 숨어든다.

이탈리아 정치가 장기 재판을 방패로 삼았던 실패는 이미 교과서적 사례다. 그럼에도 같은 장치를 도입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Ⅵ. 허위 정보 규제

비판을 범죄로 바꾸는 기술이야말로 여당이 말하는 가짜뉴스 대응은 헌법 제21조의 검열 금지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허위의 기준을 권력이 정하는 꼴이다. 탄핵과 내란을 둘러싼 의혹 제기는 언제든 범죄가 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공적 사안의 거친 표현까지 보호한 이유는 명확하다. 권력은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여당이 시도하려는 입법은 그 전제를 부정한다.

Ⅶ. 집시법 강화

여당과 권력은 불편한 목소리를 거리에서 지우려 한다. 위기 국면에서 시민은 거리로 나온다. 여당은 이를 질서의 문제로 축소하며 소음과 시간 규제로 봉쇄하려 한다. 헌법 제21조의 집회 자유는 여기서 껍데기만 남는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표현처럼, 불편함은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비용을 없애려는 정치는 민주주의를 포기한 정치다.

Ⅷ. 명예훼손·모욕죄 강화

권력자를 위한 형법, 공인 비판을 형사처벌로 확장하는 것은 노골적인 자기방어다. 영미권이 이를 폐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감시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 선을 넘는 순간, 형법은 시민을 겨누는 도구가 된다.

결론적으로 책임 회피의 입법은 헌법을 파괴한다. 이 여덟 개의 법안은 하나의 목적을 향한다. 수사는 약하게, 재판은 느리게, 비판은 조용하게. 그 결과 보호받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현 권력이다. 헌법을 권력의 방패로 악용하려는 시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법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의 정의로운 책임이다. 이에 정의의 편인 국민은 강하게 항거하고 있다.

고무열 교수(안전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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