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날, 중국 청도 로산(1,033m) 정상까지 등산화아닌 구두신고 올라간 필자
나이가 들수록 삶의 풍경은 달라진다. 젊은 날에는 더 많이 갖는 것이 곧 복이라 믿었다. 재산, 지위, 인맥의 숫자가 인생의 성적표처럼 여겨지던 시절이다. 그러나 칠순을 넘기며 비로소 알게 된다. 진짜 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어떤 이는 풍족함 속에서도 늘 불안하고, 어떤 이는 넉넉지 않아도 하루하루가 평안하다. 세월이 가르쳐 준 ‘운 좋은 팔자’의 비밀은 단순하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이다.
마음을 달래며 허심탄회하게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필자(좌측 두번째)
칠순이 넘으면, 결국 남는 것은 인간관계다. 그런데 평생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아온 사람의 얼굴에는 그 미움이 주름처럼 새겨지고, 미움을 내려놓고 산 사람의 표정에는 고요가 깃든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용서와 내려놓음이 많을수록 인생은 가벼워진다.
문득 오래된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고향 친구, 학창 시절 친구, 직장 동료, 카톡 속에 빼곡한 이름들…. 겉으로 보면 인맥이 풍부해 보이지만, 깊은 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순간 실제로 나와 교감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가지치기가 이루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더 많은 사람과 폭넓고 다양한 관계를 추구하지만, 삶의 무게가 쌓이고 시간이 귀해질수록 우리는 진지하게 묻게 된다.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만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고, 대화가 피곤하며, 이해관계만 남는 만남은 점점 삶의 짐이 된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지고, 결국 남는 인연은 몇 사람뿐이다. 우리가 진정 소중히 여겨야 할 관계는 과거의 화려함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다.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KLA 원우들과 함께하는 필자(맨 우측)
과거 아무리 좋았던 인연이라도 지금 서로의 삶에서 멀어져 있다면, 그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면 된다. 반대로 이 순간 공감대가 형성되는 인연이라면, 새롭게 가꾸어 가면 된다. 인간관계는 나를 더 나아지게 해야지, 나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음을 달래며 허심탄회하게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울고 싶을 때 말없이 옆에 앉아 있어 주는 사람. 그런 인연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인생은 결코 외롭지 않다.
삶은 결국 몇 안 되는 진실한 관계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관계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진솔할수록 좋은 것이다. 오늘 서로 안부를 묻고, 말없이 응원해 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고 각박해도,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관계 하나가 삶을 지탱한다. 오늘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다시 하루의 동행길을 떠나기 전에 다짐해 본다.
소중한 사람이 되자. 오래 곁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나이 들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가장 확실한 福이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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