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용암과 강이 빚은 철원 한탄강세계지질공원
용암대지 철원평야와 한탄강주상절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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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대지인 철원평야. 서쪽에 백마고지가 서 있고, 멀리 북녘 땅이 보인다.[사진/임헌정 기자]

(철원=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남한 내륙에 있는 유일한 용암대지인 철원평야, 수직으로 갈라진 한탄강 주상절리 협곡, 검은 현무암 절벽과 폭포.

수십만 년에 걸쳐 용암과 강이 함께 만든 장관이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한탄강세계지질공원에 속한다.

◇ 우리나라 내륙에도 용암대지가 있다

명품 '철원 오대쌀' 생산지인 철원평야가 용암대지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강원도 철원평야는 남한 내륙에서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용암대지이다.

용암대지는 묽은 용암이 지각의 약한 부분을 뚫고 솟아 올라와 물처럼 넓게 퍼져 형성된 지형이다.

화산분출은 크게 열하분출과 중심분출로 나눈다. 중심분출은 원통모양의 화도를 따라 용암이 분출된다.

성층화산, 순상화산, 종상화산 등이 중심분출에 의해 형성된 지형이다.

반면 열하분출은 지각에 생긴 틈을 따라 용암이 분출한다. '열하'란 균열, 틈을 뜻한다. 용암이 넓은 면적을 덮어 대지를 형성하는 것은 여러 개의 틈에서 분출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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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한탄강주상절리길 잔도[사진/임헌정 기자]

철원 용암대지는 신생대 제4기인 약 54만∼12만년 전에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 680m 고지와 오리산(해발 454m)에서 나온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형성된 현무암 지형이다.

분출된 용암은 한탄강 유로를 메우고 철원, 포천, 연천을 거쳐 임진강 하류인 파주 율곡리까지 약 110㎞를 흘렀다.

용암대지 같은 현무암층은 물 빠짐이 잘되고 지표수가 저장되지 않아 척박한 땅이 되기 쉽다.

하지만 철원평야에는 새로 퇴적층이 쌓여 비옥한 땅이 됐다.

◇ 철원평야와 북한 평강고원이 한눈에 잡히는 소이산

철원읍 소이산(362m) 정상에 서면 용암대지 위로 펼쳐진 넓은 철원평야가 시야에 가득 찬다.

철원평야는 드넓은 남부 지방 평야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이지만 강원도에서는 가장 크다.

비무장지대(DMZ)의 맑은 물로 생산되는 오대쌀은 밥맛 좋은 청정미로 소문나 비싼 값에 팔린다.

한국전쟁 격전지였던 백마고지가 평야 서쪽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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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과 주상절리[사진/임헌정 기자]

백마고지에서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아군과 적군이 12차례 반복한 쟁탈전 끝에 주인이 일곱 번 바뀌는 혈전이 벌어졌다.

당시 심한 포격으로 인해 고지가 백마처럼 하얗다고 해서 '백마고지'라 불렸다.

백마고지 맞은편 북녘에 김일성 고지로 일컬어지는 고암산 봉우리가 있었다.

군사 전략적 요충지이자 곡창지대인 철원을 잃고 나서 김일성이 통곡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DMZ를 사이에 두고 철원평야 건너 북녘은 넓은 평강고원이었다.

평강고원 동쪽에 용암 분출지 중 하나인 오리산이 서 있었다.

발밑으로 비옥한 농토가 시원스레 펼쳐지고 북녘땅이 지척인 양 뚜렷하게 조망되는 소이산에는 방문객이 많았다.

연중 끊이지 않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었다.

모노레일은 소이산 아래 조성된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출발해 정상 바로 밑까지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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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산 모노레일[사진/임헌정 기자]

◇ 강원도 3대 도시로 꼽혔던 철원의 옛 영화

궁예가 세웠던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은 일제 강점기에 춘천, 원주와 더불어 강원도 3대 도시로 일컬어졌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은 철원의 옛 영화를 상기한다.

일제 강점기에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과 금강산전기철도가 놓이면서 철원은 강원 북부의 교통, 물류, 산업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1937년 발행된 '철원군지'에 따르면 철원역은 승하차 인원이 약 28만명, 운송 수하물이 약 6만3천t에 이르고, 역무원 80여 명이 근무했다.

철원의 경제성장에 따라 1912년 한호농공은행 철원지점 개설을 필두로 1936년까지 식산은행 철원지점, 동주금융조합, 철원금융조합, 철원제2금융조합 등 4개 금융기관이 설립 운영됐다.

1899년 개교한 철원공립소학교의 후신인 철원공립보통학교는 1945년 광복 당시 6년 과정의 24학급에서 2천600여 명이 수학하던 근대교육의 중심지였다.

공원에는 철원역, 철원금융조합, 철원공립보통학교, 강원도립철원의원, 철원우편국, 철원극장 등이 재현돼 있었다.

광복과 함께 찾아온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철원의 영광은 옛이야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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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산전망대에서 북녘을 바라보며 기념촬영하는 관광객들[사진/임헌정 기자]

◇ 분단의 현장, 북한 노동당사

70만3천375시간 48분 38초.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을 기점으로 한 분단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북한 노동당 옛 철원군 당사 건물 앞에 서 있는 김현선 작가의 조각 작품 '두근두근'에 표시되고 있었다.

분단 현실의 슬픔과 통일 염원을 표현한 이 작품에서 하트 모양 심장은 통일을 상상할 때의 두근거림을 나타낸다.

옛 노동당사 건물은 철원역사문화공원 맞은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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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북한 노동당사 건물[사진/임헌정 기자]

이 건물은 1946년 초 북한 정권 아래서 착공돼 지상 3층, 연건평 580평 규모로 지어졌다. 벽돌, 철근 콘크리트 등으로 튼튼하게 지어져 한국전쟁 때도 무너지지 않았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주민들을 대상으로 성금을 모으고,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으며, 남북 평화 기원 행사가 이 건물을 배경으로 열리곤 한다.

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는 땅이 된 철원이 영화를 되찾을 날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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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역사문화공원과 소이산[사진/임헌정 기자]

◇ 아찔한 한탄강주상절리 잔도 걷기

벼랑 끝에 선 적은 있을지라도 벼랑 옆 허공을 걸어본 경험은 별로 없을 것이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허공중을 걷는 듯한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협곡에 잔도가 놓여 있어서다. 잔도는 절벽에 선반처럼 달아 만든 길이다.

깊이 수백m의 협곡 7부 높이쯤에 설치된 철제 잔도를 걸으면 발밑으로는 한탄강, 강 건너편으로는 주상절리를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오금이 저리는 전율 체험은 절경 감상에 올려지는 덤이다.

래프팅 장소로 유명한 한탄강의 급물살은 더 위험해 보이고, 주상절리는 신비스럽기만 하다.

잔도는 폭이 1.5m로, 양방향 통행이 가능하다. 길이는 순담계곡에서 드르니쉼터까지 3.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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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한탄강 주상절리[사진/임헌정 기자]

주상절리는 긴 통 모양의 절리를 말한다. 현무암질 용암이 땅 위를 꿀물처럼 흐르다가 차가운 환경과 만나게 되면 표면이 냉각돼 단단하게 굳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용암의 표면은 3∼7각형으로 갈라지게 된다. 냉각이 지속하면서 단단하게 굳은 표면의 틈은 땅속까지 연장된다.

그 결과 기둥 모양 바위들이 무수하게 서 있는 듯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철원한탄강 주상절리길에서는 기다란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 수평 판 모양의 수평절리, 주름치마 모양의 주상절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다.

철원, 포천, 연천에는 한탄강과 임진강을 따라 주상절리가 형성돼 있다.

철원의 잔도를 포함해 한탄강주상절리길은 총 121㎞에 이른다.

선캄브리아 시대부터 신생대까지의 다양한 암석을 이 길에서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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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탕폭포[사진/임헌정 기자]

◇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직탕폭포

한탄강 상류에 있는 직탕폭포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여느 폭포와 달리 하천 면을 따라 옆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평평한 용암대지 위에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용암이 식어 굳어진 현무암 위로 물이 흐르면서 주상절리를 따라 암석이 떨어져 나가고, 계단 모양의 폭포가 형성됐다.

높이는 3m 정도이지만 폭이 80여 m에 이른다.

직탕폭포는 옆으로 길게 펼쳐진 생김새 때문에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두 폭포는 크기 면에서 압도적 차이가 있지만, 모양뿐 아니라 '두부침식'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두부침식이란 물이 떨어지는 힘에 의해 암석이 침식돼 폭포의 위치가 조금씩 강 상류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다.

나이아가라는 초당 7천t씩 흘러내리는 물이 계속 바위를 깎아내리면서 1년에 1∼2m씩 상류 쪽으로 후퇴하고 있다.

직탕폭포도 오랜 세월 두부침식을 하다 보면 한탄강을 따라 휴전선 지나 북한으로 올라갈지 모른다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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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한탄강 물윗길 부교[사진/임헌정 기자]

겨울에는 직탕폭포에서 순담계곡에 이르기까지 한탄강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얼음이 언 수면 위에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도록 플라스틱 부교가 설치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탄강 물윗길'의 등장이다.

물윗길의 거리는 약 8㎞에 이른다. 물윗길 트레킹은 한겨울에만 10만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를 끈다.

10월 말부터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직탕폭포에서 일부 구간까지만 부교가 설치돼 운영되고 있었다.

물윗길에서는 주상절리를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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