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국 청도
중국 산동반도의 동쪽 끝, 바다가 산의 품으로 스며드는 자리에 노산(崂山)이 장대한 실루엣을 드러낸다. 예로부터 “신선들이 노닐던 산”이라 불려 온 이곳은 자연의 고요함과 신비로움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다. 이번 등정은 단순히 산을 오르는 여정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에 가까웠다.
이른 아침, KLA 코리아리더스아카데미(원장 김명수) 원우들과 함께 노산을 향하였다. 산행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노산은 바다의 존재감을 숨기지 않았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등을 가볍게 밀어주고, 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파도 소리는 발걸음마다 자연스럽게 박자를 맞추었다. 바다와 산이 동시에 어우러진 풍경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러나 그 작은 존재도 자연을 품에 안으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노산은 단지 높은 산이 아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돌길과 바위, 절벽과 계곡이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져 하나의 ‘서사’를 이루었다. 소나무 향이 건네는 청량함, 바위 틈새로 흐르는 계곡물의 투명한 울림, 오래도록 버티어온 절벽의 묵직한 기운이 함께 어우러져 산 전체가 한 편의 고전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산 등반하는 도중 조중동 e뉴스 김명수 발행인과 포즈를 취하는 필자
도교의 성지답게 곳곳에 자리한 도관과 고찰들은 노산의 오랜 신성성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세월에 닳은 기와와 문지방은 이 산을 지켜 온 사람들의 숨결을 담아내고 있었고, 그들의 마음이 왜 이 산을 택했는지, 왜 이곳에서 깨달음을 이야기했는지 자연스레 이해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노산은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에게 깊고 묵직한 의미를 건네는 산이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한층 더 넓어졌다. 멀리 펼쳐진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경계가 희미해졌고, 도시의 소란스러움은 바람 속에 묻혀 점점 멀어졌다. 그러나 산 정상 턱에 오르다가 숨이 턱차서 포기하려 하였다. 내 나이 72세에 등산화도 없이 그저 구두신고 1,033m나 되는 높은산을 등산한다는 것은 산에 대한 모독이었다. 눈이 쌓이고 쌓여 갈길이 미끄러워 낙상하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한번 뿐인 인생 무엇이 두렵겠는가?", 스스로를 다짐하면서 재차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하늘이 도와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노산 정상에 올라서 손가락으로 저 멀리 대한민국 땅을 가르키는 필자
KLA에서는 처음 출발한 원우들은 모두 중도에 포기하고, 내 옆에 든든한 김명수 원장과 김복순 원우가 있었다. 가슴벅찬 감동의 전율을 세명이 함께 공유하고 만끽하였다. 말 없이 자연을 바라보는 짧은 침묵 속에서, 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이 산을 찾았는지 스스로 답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노산이 들려주는 메시지는 단순했지만 그 깊이는 결코 얕지 않았다.
정상에서 맞이한 눈과 비바람은 서늘하고 추웠지만, 그 눈바람 속에서 마음은 오히려 따뜻해졌다. 힘들었던 등정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질 만큼 위안이 되는 순간이었다. 신선들이 왜 이 산을 마음에 품었는지, 왜 이곳에서 노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는지 자연스레 이해가 되었다. 자연이 주는 해방감, 시간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는 여유, 그리고 시야 끝없이 펼쳐지는 세계의 넓이, 이 모든 것이 ‘신선의 경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 노산 등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마음에 쌓인 먼지를 깨끗이 털어내고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시간이었다. 걸음 하나하나가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질 만큼 강렬했고, 산이 전해준 위로는 말로는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울림으로 남았다.
노산등반을 함께하는 김복순 원우와 함께 감동의 순간을 만끽하는 필자
노산은 그렇게 내게 ‘가장 높은 산’이 아니라, ‘가장 다시 찾아가고 싶은 산’ 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청도 최고의 명산, 노산의 등반은 평생 잊지못할 것이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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