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논조는 매우 미묘한 균형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쪽에서는 "소비 회복의 조짐"이라는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경기 불확실성 확산"이라는 짙은 안개가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상반된 조짐은 현재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K자형 회복'의 단면이자, 정책 당국이 풀어야 할 난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 되살아나는 소비의 작은 불씨
길고 긴 소비 침체의 터널 끝에서 미세하나마 희망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고물가와 고금리라는 이중고 속에서 얼어붙었던 소비자들의 지갑이 조금씩 열리는 징후들이 포착된다.
우선 수출 호조의 낙수효과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한국의 주력 산업 수출이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관련 기업의 실적 개선과 고용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가계 소득의 증가로 이어져 소비 여력을 미세하게나마 키우는 기반이 된다.
다음으로 물가 상승세의 둔화 기대감이다. 비록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지만, 통계적인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지나 둔화세를 보이면서,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는 한국은행에게도 운신의 폭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백화점 등 고급 소비재의 매출 증가나 특정 서비스업의 활력 증대로 구체화되며, 경제 심리가 최악의 국면을 지났다는 일말의 안도감을 제공한다.
- 불확실성을 키우는 짙은 안개
그러나 이러한 소비의 작은 불씨가 한국 경제 전체를 따뜻하게 덥히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냉정한 현실 또한 그대로 존재한다. 소비 회복을 둘러싼 낙관론을 압도하는 것은 바로 구조적인 불확실성이다.
내수 회복의 양극화가 걸림돌이다. 소득 상위층을 중심으로 한 소비는 빠르게 회복될지 모르나, 대다수 서민층과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고금리發 이자 부담과 원가 상승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로 인한 건설 투자 부문의 급격한 위축은 내수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이다.
수출은 '맑음'이지만 내수는 '흐림'인 비대칭적 회복도 문제다.
대외 지정학적 리스크의 심화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등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는 지정학적 위험은 언제든 원자재 가격 급등과 금융 시장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불확실성과 중국 경제의 더딘 회복세까지 더해져, 한국 경제의 최대 변수인 환율과 금리의 변동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는 단정보다는 "회복의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정부와 정책 당국은 수출이라는 '외풍'에 기댈 것이 아니라, 내수라는 '뿌리'를 튼튼히 하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소비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물가 안정과 함께 실질소득을 증대시키는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또한, 건설 및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하고, 취약 계층의 이자 부담을 완화하여 가계 부채 리스크가 소비 심리를 완전히 짓누르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경제는 지금 "일시적 반등"을 "지속 가능한 회복"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작은 소비 회복의 조짐에 취할 것이 아니라, 경기 불확실성이라는 짙은 안개 속에서 구조적인 위험 요소들을 정밀하게 제거하는 섬세한 정책 운용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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