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십 년간 대한민국 정치사의 주요 테마 중 하나는 '검찰개혁'이다. 역대 정권들은 집권 초기부터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의 무소불위한 권력을 견제하겠다며 칼을 빼 들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 시도는 늘 같은 비극적 결론으로 귀결되곤 했다.
바로 “역대 정권 검찰이긴 정권없다”는 뼈아픈 현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정권이 검찰을 ‘이긴다’는 표현 자체가 법치국가에서는 부적절할 수 있으나, 여기서 ‘이긴다’는 의미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정권이 사정 기관을 통제하려 했다는 오해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정권은 늘 이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패배 해왔다. 그 근본 원인은 검찰이 가진 기소권의 독점이라는 막강한 권한에 있다.
검찰은 수사의 최종 단계에서 특정인을 법정에 세울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소권을 유일하게 행사한다. 이 권한은 정권의 핵심 인사와 비리 의혹을 수사할 때 정권을 향한 가장 강력한 압박 수단이 된다. 제도를 통해 검찰의 수사 범위를 제한하려 해도, 결국 수사 종결과 처분은 검찰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기에, 검찰은 정권의 운명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심판자 역할을 한다. 또한, 검찰 조직 내부의 강한 동질성과 상명하복 문화는 외부의 개혁 시도를 ‘정치 탄압’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저항하는 조직적인 방어 기제로 작동한다. 정권이 바뀌면, 개혁의 주역들은 수사의 대상이 되는 ‘적폐 청산’의 순환 구조가 반복되면서, 정권의 검찰 개혁은 늘 미완으로 끝나게 된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검찰개혁, 샴페인 터트리기엔 이르다”는 경고는 매우 현실적이다.
지난 몇 년간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대대적인 제도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제도가 안착되어 실질적인 권력 견제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여전히 검증 단계다. 새로운 기관인 공수처의 운영이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했고, 검경 수사권 조정 후 수사 지연이나 경찰 권력 비대화에 대한 우려 등 ‘풍선 효과’에 대한 비판도 상존한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조직 구성원의 문화와 관행, 정치적 판단의 근거를 바꾸는 것은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다. 물리적 힘을 뺐다고 해서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완벽하게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혁을 이뤘다고 자축하며 긴장을 푸는 순간, 검찰 권력은 다시금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본래의 영향력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이는 역대 정권의 개혁 시도가 끝내 좌절된 본질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진정한 검찰 개혁의 성공은 정권이 검찰을 통제하거나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권이 검찰에 대해 사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 자체를 단념하고, 검찰이 오직 법과 정의의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완벽한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는 데 있다. 샴페인은 검찰이 정권에 대한 칼날을 무디게 할 때가 아니라,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검찰이 그 흔들림 없이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는 사정기관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을 때 터뜨려야 한다. 그때까지 개혁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며, 국민은 그 과정을 끈기 있게 감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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