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에게 마지막 큰절…섬김은 계속됩니다"
고정미 뉴질랜드 와이카토한인회장 "참전용사 예우·정착지원·문화외교 'K-가교' 비전"
현지와 어우러진 K-컬처는 공공외교의 모범…"기억을 지키고, 오늘을 돕고, 내일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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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미 뉴질랜드 와이카토 한인회장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고정미 뉴질랜드 와이카토 한인회장. 2025. 10. 4. phyeonso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마지막 공식 섬김행사에서 큰절이었지만, 감사와 예우는 멈추지 않겠습니다. 방식만 달라질 뿐이에요."
뉴질랜드 북섬 해밀턴에서 약 2천 명의 한인사회를 이끄는 고정미(64) 와이카토 한인회장은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난 6월 29일 개최한 6·25 전쟁 75주년 기념행사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와이카토 지역 참전용사 섬김 행사인 '피스 선데이'(Peace Sunday)는 1997년부터 시작됐다. 한때 30명이 넘는 참전용사들이 참석했으나 세월이 흘러 5명만 남은 데다 고령인 점을 고려해 공식 행사는 올해가 마지막이었다.
재외동포청 주최로 열린 '2025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가차 모국을 방문한 그는 "한민족의 보은(報恩) 정신은 더 넓고 촘촘하게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마지막 행사에는 참전용사와 유가족 12명을 비롯해 한인과 현지인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고 회장은 "브라이언 참전용사가 '15세 소년병의 기억'을 낭독하는 순간 모두가 숙연해졌다"며 "이날의 감동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한국인의 감사 정신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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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 섬김 행사인 '피스 선데이'(Peace Sunday) (서울=연합뉴스) 지난 6월 29일 열린 뉴질랜드 해밀턴시에서 열린 6·25 전쟁 75주년 기념행사에서 참전용사 섬김 행사인 '피스 선데이'(Peace Sunday)를 마치고 고정미(뒷줄 왼쪽서 6번째)회장이 참전용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와이카토 한인회 제공]
와이카토 한인회는 1995년 설립된 이래 한인의 정착과 생활을 돕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다. 고 회장은 "한인회는 단순히 한인들만의 울타리가 아니라, 현지와 나란히 걷는 가교"라며 "참전용사 예우·정착 지원을 돕는 공공서비스·문화교류가 우리 활동의 삼각 축"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한인회의 저력은 빛을 발했다. 2020년 5월, 귀국길이 막힌 한인과 유학생들을 위해 외교부·재외동포재단과 협력해 대한항공 특별기 운항을 성사했다. 그는 '위기 속에서 한인회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는 평가를 들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한인들의 정착 지원은 '올인원 인포메이션 데이'를 통해 체계화했다. 고 회장은 "오클랜드까지 가지 않고도 하루에 영사 업무, 법률·회계·의료·심리 상담을 모두 해결할 수 있어 한인들이 크게 호응한다"며 "다문화 정착은 결국 문턱을 낮추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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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절로 감동을 울린 고정미 회장 (서울=연합뉴스) 지난 6월 29일 마지막 참전용사 섬김 행사에서 참전용사들에게 큰절을 올리며 감사인사를 전해 심금을 울린 고정미 회장. [와이카토 한인회 제공]
고령화하는 한인 사회를 위한 세심한 배려도 돋보인다. 매달 열리는 'K 실버 미팅'은 어르신들을 위한 대표 프로그램이다. 그는 "매달 마지막 목요일이면 어르신들이 모여 식사하고 건강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다"며 "이민살이가 외롭지 않다는 말씀을 들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취약 동포를 위해 주 1회 이상 무료 음식을 제공하고, 젊은 부모 모임 '해초맘', 청소년 방과 후 활동, 무료 한국어·컴퓨터 교실, 영어 강좌·종이접기 등을 가르치는 문화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고 회장은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생활 플랫폼이야말로 한인 공동체의 힘"이라고 했다.
특히, 매년 열리는 'K-페스티벌'은 현지 사회와의 교류를 상징하는 행사다. 불고기·비빔밥 체험, 김치 담그기, K-POP 대회, 가야금·부채춤 공연, 종이접기, 한복패션쇼 등 전통예술 무대가 펼쳐져 500명이 넘는 현지인이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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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페스티벌'서 한복 입고 인사하는 와이카토 한인들 [와이카토 한인회 제공]
고 회장은 "현지인들이 직접 담근 김치를 맛보며 한국 음식을 온몸으로 체험했다"며 "문화외교는 거창한 게 아니라 맛보고 함께 웃는 자리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외에 사는 한인들은 현지인과 함께해야 한다"며 "거주국에 세금을 내고 그 나라도 빛내줘야 세계 속에서 빛이 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인회는 해밀턴 시청과 재외동포청 후원, 뉴질랜드 정부 펀드를 활용해 다양한 무료 사업을 추진하며 지역사회 신뢰를 쌓았다. 그는 "핵심은 신뢰와 투명성"이라며 "작게 시작해도 기록과 신뢰를 쌓으면 정부 지원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말했다.
고 회장의 봉사 이력은 교육 현장에서 더욱 빛난다. 그는 2000년부터 24년간 와이카토 한국학교 교사·교감·교장으로 봉사하며 차세대 한국어·역사·문화·정체성 교육에 헌신해왔다. 또 뉴질랜드 한글학교 협의회와 오세아니아 한글학교 협의회를 함께 창립해 회장을 지냈고, 세계한글학교협의회 대표도 역임했다. 현재 한글학회 해외 교원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한글·역사·문화 교육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현지 사회와 맞물린 프로젝트를 얹어야 합니다. 교사는 희망의 인프라니까요."
또한, 와이카토 다민족협회 부회장으로 다문화 축제에 한복을 입고 꾸준히 참여하며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그는 "현지인들이 한복을 통해 한국을 이해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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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어린이 종이접기 마스터 수여식 (서울=연합뉴스) 고정미(왼쪽서 7번째) 회장이 2014년 뉴질랜드 로토루아호텔에서 종이문화재단 노영혜(왼쪽서 8번째) 이사장과 종이접기를 위한 MOU 및 어린이 종이접기 마스터 수여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와이카토 한인회 제공]
고 회장은 그동안의 공로로 뉴질랜드 영국 여왕 공로 훈장(2012), 해밀턴 시민봉사상(2014),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2016), 한글학회 국어운동 공로 표창(2018), 세계한인의 날 국민포장(2024) 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훈장과 상훈은 제가 아니라 한인들과 현지인, 그리고 자원봉사자 모두가 함께 받은 것"이라며 공을 돌렸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지속 가능한 예우'로 참전용사 지원을 생활과 기록 사업으로 전환하고, 정착지원은 연중 상설화하겠다"며 오는 11월 8일 열리는 'K-페스티벌'을 통해 노년·청년·다문화가 한 무대에서 만나는 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참전용사 예우는 기억을, 정착지원은 오늘을, 문화교류는 내일을 여는 길입니다. 와이카토 한인회는 앞으로도 한국과 뉴질랜드를 잇는 'K-가교'가 되겠습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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