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는 청년층 실업란의 그늘에 놓여 있다.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국가 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함에도, 현실은 일자리를 나누는 데만 급급하였다. 고통을 분담한다는 미명 아래, 청년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알바’라는 불안정한 일자리뿐이다. 기성세대는 생존을 위해 청년들의 미래마저 가로막으며, 결국 모두가 공멸하는 길을 걷고 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해답을 자본, 즉 금융에서 찾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권력이며, 금융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척추와도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금융은 아직 원시적이다. 예금과 대출에만 머무르고, 부동산 PF에 목을 매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금융의 흐름 속에서 한국은 여전히 변방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산업은행 노조위원장 시절, 국가와 정부를 설득하며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KDB를 단순한 국책은행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메가뱅크(Mega Bank)로 키우고자 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자산·건전성 지표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BIS비율 또한 초우량 금융기관의 명성을 보장했다. 그 무엇도 불가능하지 않았던 황금의 시기였다.
구상은 명확했다. 산업은행을 민간투자은행(CIB)과 정책금융공사(KOFC)로 분리하고, 산하 금융기관을 통합해 자산 1,000조 원 이상의 거대 금융그룹을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계 200여 개 지점과 사무소를 개설해 한국 청년 2만 명 이상을 해외에 파견하는 계획을 세웠다. 만약 이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한국은 일자리 창출을 넘어 세계 금융을 좌우하는 초선진 자본국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웅대한 꿈은 무참히 꺾였다. 당시 내부 구성원조차 ‘불가능하다’며 반대를 이어갔고, 결국 박근혜 정부는 금융 문외한들의 손에 개혁을 맡겼다. 창조경제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CIB와 KOFC를 다시 산업은행으로 되돌려 놓았다. 관치금융은 재현되었고, 그 뒤로 수십조 원의 부실이 쌓이며 초우량 금융기관의 위상은 무너졌다. 필자와 함께했던 동료들의 열정도, 그리고 내 젊은 날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돌이켜보면, 산업은행의 민영화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청년들에게 세계를 무대로 꿈꿀 기회를 주고, 한국을 진정한 금융 강국으로 도약시키려는 시대적 사명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좌절되었고, 지금도 우리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허망한 안타까움뿐이다. “아단법석” 떠들 필요도 없다. 필자의 시대는 지나갔고, 내 이상은 바람처럼 흩어졌다. 다만, 아직도 가슴 속에서는 회한의 여운을 느끼면서 묻는다. “그때 우리가 더 용기 내지 못한 것이, 결국 오늘의 선진금융강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가지못한 것 아닌가.”
그 질문이 오늘도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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