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상달, 추석으로 시작하는 첫 주일에 우리는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며 하늘이 내리는 은혜를 되새긴다. 그러나 역사의 큰 흐름을 되짚어보면, 단순히 풍요와 축복만이 아니라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보편의 법칙이 얼마나 엄중하게 작용해왔는지 깨닫게 된다.
옛말에 “順天者興 逆天者亡(순천자흥 역천자망)”이라 했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거스르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뜻이다. 조선의 역사만 살펴봐도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즐비하다.
태종 이방원은 정적 정도전을 제거했지만, 그의 정책을 계승하여 세종의 시대를 열었고, 나라는 오히려 번영했다. 그러나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낸 뒤 그의 정책을 모조리 부정하며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옹졸함과 무능이 불러온 대가는 나라의 쇠락이었다. 역사의 평가가 냉혹한 이유는 바로 이 인과응보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세조의 삶은 인과응보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조카 단종과 충신들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지만, 그와 그의 가문은 문둥병, 요절, 손절(孫絶)이라는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한명회 또한 권세를 누렸으나 끝내 자손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은 뒤 부관참시라는 치욕을 당했다. 역사는 결코 불의와 야합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법칙은 왕조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근현대사에서도 지도자들이 시대의 소명을 다했는지 여부에 따라 다른 평가와 결과가 내려졌다. 독재를 하였지만 산업화를 이끈 박정희, 민주화로 발전시키고 진전시킨 김대중 모두 각자의 시대적 소명을 감당하며 역사의 흐름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 소명을 잊거나 사익에 매몰된 순간, 지도자와 사회는 ‘고장난 벽시계’처럼 길을 잃었다.
결국 인과응보는 인간 사회의 근본 질서다. 씨앗을 심으면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두듯, 선한 인연은 선한 결실을, 악한 인연은 파멸의 결말을 가져온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맺고 있는 인연을 더욱 소중히 해야 한다. 인격을 존중하고, 서로를 존경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떳떳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굴러가고 있다. 그 바퀴 위에서 우리는 때로 앞서가기도 하고 뒤처지기도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우리가 맺은 인연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결과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의 선택과 관계를 귀히 여기는 것이 바로 내일의 역사를 준비하는 길이다.
인연을 소중히 가꾸고, 바른 길을 걸으며, 서로의 삶에 정직한 흔적을 남길 때—인과응보의 법칙은 우리에게 축복의 열매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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