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완 국제정상고등학교(Palawan Global Summit High school)
필리핀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 수도는 메트로마닐라이며, 공용어는 타갈로그어와 영어다.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인구 1억 천만 명을 넘는 대국이면서도,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고단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
오랜 세월 스페인과 미국,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마르코스 장기 집권 아래 계엄령의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따뜻한 미소와 깊은 신앙심을 간직한 사람들의 땅이기도 하다.
이번에 내가 발을 디딘 곳은 필리핀의 마지막 낙원이라 불리는 팔라완(Palawan)섬이다. 공항에 도착하자 반가운 얼굴이 나를 맞았다. 안준태 선교사님. 첫인사 순간 그의 억양에서 묘한 향수가 밀려와 나는 본능처럼 물었다. “고향이 어디 십니까?” 뜻밖에도 그는 내 고향 아랫마을 면사무소 근처가 고향이라고 했다. 세상은 참으로 좁았다. 낯선 이국에서 만난 ‘이웃사촌’ 같은 정겨움에 가슴이 뭉클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느낀 것이 있다. 한국인은 어디에 가든 치열한 삶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팔라완에서도 그 주인공을 만났다. 바로 안준태·박현숙 선교사 부부였다. 십여 년 전, 그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팔라완으로 건너왔다. 물도, 땅도, 사람도 낯설던 곳에서 그들은 오직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고단하고 외로운 길이었으나 그들의 헌신은 열매를 맺어, 지금은 글로벌 서밋 고등학교(Global Summit High School)를 세우고 수많은 청소년을 가르치고 있다. 더 나아가 초등학교와 대학설립까지 준비 중이라 하니, 그 열정과 비전이 가슴을 울렸다.
물론 길은 쉽지 않았다. 자금의 압박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들은 낙심하지 않았다. 음악·미술·컴퓨터·드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을 기다리며, 한국에서 온 재능 기부자에게는 정갈한 숙식과 더불어 영어를 배울 기회까지 열어주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워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국위선양이며 인류애의 실천이었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헌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마 그 대답은 명확할 것이다. 복음을 통해 무지와 가난에 눌린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여 보다 나은 삶을 선물하려는 것. 그 거룩한 사명감이 그들을 버티게 한 힘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번 나의 방문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농업, 특히 고추 재배였다. 팔라완은 기후가 따뜻하고 넓어 농업이 주요 생계 수단이다. 고추는 다년생 작물로, 적절한 기후에서는 십 년 이상 생명을 이어간다. 내가 준비한 새로운 농법과 미생물 비료는 기존 방식보다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열 배 이상 높일 수 있다. 팔라완의 농민들에게 이 기술을 전수한다면, 삶의 질을 바꾸는 혁신이 될 것이다.
농장을 함께 걸으며 그들의 눈빛에서 나는 기대와 설렘을 읽었다. 고추밭에서 움트는 푸른 싹은 단순한 작물의 성장이 아니라, 이 땅의 미래와 희망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고추농사 프로젝트(Chili Farming Project) 샘플 농장 접목 시범
돌아오는 길, 나는 깊이 생각했다.
선교사 부부가 뿌린 신앙의 씨앗, 내가 심으려는 고추 농사의 씨앗. 이 두 씨앗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결국 같은 꿈을 향하고 있다. 그것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열어주고, 세상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일이다.
팔라완의 하늘은 유난히도 푸르고, 바다는 끝없이 투명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눈부셨던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와 사랑이었다. 이제 우리도 그들의 씨앗에 물을 주고 함께 가꾸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동행이며, 인류가 함께 나아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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