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영의 논리보다 국가 운영의 균형을 중시하는 선정이다

정치는 종종 예측의 영역을 벗어난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라 불린다. 이번 이혜훈 기획예산처장관 후보자 지명 소식 역시 많은 이들에게 짧지만 분명한 한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Surprise! 익숙한 구도도, 예상된 수순도 아니었다. 그만큼 이번 인사는 단순한 자리 채우기가 아니라, 메시지를 품은 선택처럼 보인다.

지명 소식을 접하는 순간, 문득 한 구절의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Iron sharpeneth iron; so a man sharpeneth the countenance of his friend. – 잠언 27장 17절)

이 대통령과 이혜훈 장관 내정자, 두 사람 모두 개신교 신자라는 사실은 단순한 종교적 공통분모를 넘어 상징성을 갖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철과 철’의 관계는 경쟁이 아닌 상호 단련이다. 부딪히되 부서지지 않고, 마찰 속에서 더 날카로워지는 관계다. 그것은 권력의 일방적 흐름이 아니라, 서로를 긴장시키며 완성도를 높이는 동행을 뜻한다.

이 지점에서 이번 인사는 ‘실용’과 ‘통합’이라는 키워드로 읽힌다. 이념의 순혈성보다는 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진영의 논리보다 국가 운영의 균형을 중시하는 선택. 정치적 동질성 속에서도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할 수 있는 구조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면, 이는 결코 가벼운 인사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고전적인 정치 전략의 냄새를 읽는다. 이간지계(離間之計), 혹은 이이제이(以夷制夷)가 떠오른다.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인물을 중용함으로써 내부의 긴장을 관리하고, 결과적으로 전체의 안정과 효율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를 단순한 책략으로만 해석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이혜훈 내정은 갈라치기보다는 조율, 이용보다는 균형의 색채가 더 짙다

정치는 결국 사람으로 완성된다. 특히 기획예산이라는 국정의 심장부를 맡을 자리는 숫자와 철학, 냉정함과 공공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이혜훈 후보자가 어떤 철학과 태도로 이 무거운 자리를 감당할지, 그리고 대통령과 어떤 방식으로 ‘철과 철’의 관계를 만들어갈지는 이제 검증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청문회는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다. 그 사람의 언어, 태도, 침묵까지도 기록되는 시간이다. 이번 청문회는 정책 능력의 검증을 넘어, 이 인사가 품은 시대적 의미를 확인하는 장이 될 것이다.

정치는 늘 의심받아 왔지만, 때로는 뜻밖의 선택이 기대를 낳는다. 이번 인사가 그러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우리는 흥미와 긴장 속에서 지켜보게 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이 만남이 국정의 얼굴을 더 빛나게 하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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