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정치와 삶의 품격은 비움에서 시작된다
요즘 세상은 너무도 ‘가득 찬 것’만을 원한다. 조금의 여백도, 느림도, 부족함도 용납되지 않는다.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은 경쟁과 효율, 그리고 완벽함만을 좇는다.
그 결과, 세상은 점점 숨 쉴 틈이 사라지고, 인간의 마음은 한없이 팍팍해지고 있다.
옛 스승과 제자가 함께 차를 마시던 장면이 떠오른다. 스승은 제자에게 찻잔을 채워보라고 했다. 제자가 찻잔이 가득 차자 멈추려 했지만, 스승은 계속 채우라고 했다. 결국 차는 흘러넘쳐 상을 적셨고, 그제야 스승은 말했다. “비우거라. 비워야 비로소 채울 수 있느니라.” 그 한마디 속에는 삶과 배움, 그리고 관계의 본질이 담겨 있다.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자신만의 욕심에 갇히면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국정감사의 본래 목적은 ‘국민을 위한 감시와 개선’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국감장은 국민의 삶을 위한 토론장이 아니라, 상대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공방의 무대’로 변질되고 있다. 정책의 본질은 사라지고, 카메라 앞에서의 장면 연출만 남았다. 국민의 목소리보다 당리당략이 우선되고, 협력보다는 비난이 앞서는 모습 속에서 ‘비움의 미덕’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의 철학자 노자는 "비움은 채움보다 깊다."고 말했듯이 비움은 단순히 내려놓음이 아니다. 비움은 더 큰 것을 담기 위한 준비요, 진정한 성찰의 시작이다.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익과 명예, 당의 유불리를 잠시 비워낼 때, 비로소 국민의 뜻을 담을 그릇이 된다.
그릇이 넘치면 더 이상 담을 수 없듯, 욕심으로 가득한 정치에는 국민의 신뢰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제는 정치가 변해야 한다.
정치인이 먼저 비워야 한다.
비워야 국민을 담을 수 있고, 비워야 진심이 전해진다.
그리할 때 국정감사는 진정한 ‘국민의 감사(感謝)’가 될 것이다.
차 한 잔의 여유 속에서 배움을 얻었던 제자처럼, 우리 정치도 ‘비움의 변용’을 통해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법정스님은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즉,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지름길은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비움은 결코 약함이 아니다.
비움은 세상을 품을 수 있는 가장 강한 여유다. 그 여유가 지금, 우리의 삶이나 정치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덕목이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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