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묵의 『절규』는 단편소설 「진혼곡」, 「상엿소리」, 「엘레지」, 「내 몸매가 어때요」, 「에필로그」를 묶은 옴니버스 소설이다. 다섯 편의 소설 가운데 압권은 「진혼곡」이다. 이 작품은 6.25 전쟁이라는 거대담론에 재혼, 가족해체, 조직범죄, 탈세, 마약범죄, 총기 난사라는 미시담론을 녹여내어 미국 한인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현안을 증언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전망을 작가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6.25 전쟁은 김준석 가족 3대의 삶과 미국 이민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1,129일간 계속된 전쟁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약 24만 명, 부상자가 약 23만 명, 행방불명자가 약 39만 명에 이르렀다. 대부분이 강원도, 서울, 경기도 거주자들이었다. 서울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는 전쟁 중에 행방불명되었다. 할머니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세 살배기 아들을 홀로 키웠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정부는 좌익으로 활동했거나 행방불명자 가족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연좌제를 발동하였다. 그로 인하여 민족 분단의 굴레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할머니의 소망은 남편의 무사 귀환, 가족의 안녕, 대를 잇는 것이었고, 고달픈 인생을 막걸리로 위로하면서 살았다. 성장한 아들은 철공소에서 일했고, 결혼해서 준석을 낳았으나 일찍 상처했다. 김준석의 아버지는 어느 날 ‘아들 하나 있는 과부’를 데려왔고, 반대하던 할머니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새어머니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의절하게 만들고, 김준석을 철공소 소년공으로 내몰았다. 장손이 대를 잇기를 염원하던 할머니의 도움으로 준석은 야간공고에서 기술을 배워 전기 제품 수리 가게에 취직했다. 아버지가 새어머니 모자를 데리고 울산 조선소로 떠나자, 김준석 혼자 병석의 할머니를 돌보고 장례를 치렀다. 6.25 전쟁이 물려준 가족사적 비극과 빈곤 그리고 가족해체는 준석을 취업 이민으로 내몰았다. 김준석은 자신의 험난했던 삶의 여정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거대담론에 녹아든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증언하고 있다.
김준석의 이주와 정주 과정에서의 일탈은 공장 생활과 전당포 운영이라는 미시 담론을 통해서 증언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억압받고 차별받고 냉대받는 삶 속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합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저임금 이주노동자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준석은 공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다가 야간공고에서 익힌 기술 덕분에 전기기술자 보조로 일하게 되고, 조그만 전당포의 주인이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장물을 사들이고 탈세를 한다. 할머니가 ‘옳게 살아라’라고 당부했고, 준석은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맹세했으나,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은 불안을 키워 고통에 빠지게 한다. 부처님께서는 ‘만족하는 사람은 행복을 얻고, 탐욕을 부리는 사람은 고통’에 빠진다고 했다. 준석은 악몽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기 위해 새롭게 출발을 한다. 그러나 장물 주인의 의뢰를 받은 협박범의 전화로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 가본 적이 없는 교회를 찾는다. 목사로부터 평화에 대한 설교를 듣고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협박범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다. 평화로운 가정을 꿈꾸는 제니퍼는 준석을 대신하여 각서를 들고 협박범과 킬러를 만난다. 협상이 진행될 때 플로리다에 근거를 둔 마약갱단이 현지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기관총을 난사하여 제니퍼와 킬러가 즉사한다. 장례식장에서 준석은 현지갱단의 두목을 만나 그가 제니퍼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그는 준석에게 죽은 제니퍼를 외롭게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새로운 정착지로 떠난다.
워싱턴 거주 동포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나 그 후예들이다. 2018년 3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AAS & CCEC에 참석하여 이영묵 작가를 만났다. 이영묵 작가는 워싱턴에 살고 있는 20만 명의 교민 가운데 이주노동자가 18만 명이고 유학하여 정주한 사람이 2만 명이라고 했다. 작가를 포토맥포럼과 출판기념회에서 여러 차례 만났고 「한국문학 연구자의 눈에 비친 워싱턴문학회」(『워싱턴문학』 23호, 2020)와 「격동기 한국 체험과 기록의 역사적 의의」(『그때 그곳에서의 나의 증언』, 대동field, 2022)를 작성하기 위해 작가가 발표한 작품들을 읽어보면서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즐겨 다루고 있음을 발견했다. 『절규』, 『워싱턴 달동네』, 『워싱턴에서 3박 4일』, 『우리들의 초상화』 등은 이주 한인을 주변인이나 경계인으로 설정하여 그들의 힘겨운 삶을 증언하면서 그들의 평화 찾기가 얼마나 험난한 여정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미국에 이주하여 먹고 살기 위해 정글과 같은 삶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우리들의 초상화』 서문에서 ‘나의 주위에서 적나라한 원색의 삶을 보아왔다. 그리고 우리들의 진한 원색이야말로 우리 이민 1세들의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를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드물다. 작가가 밑바닥 사람들의 삶의 여정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동포사회가 지닌 다양성에 대한 사실적 인식과 힘겹게 살아가는 동포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의 산물이다. 작가는 ‘서로 마음을 열고, 이해하며, 서로 사랑하고 또 하나가 되어 다음 이민 100년을 위해 힘찬 행군에 조그만 힘이라도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는 현재 포토맥포럼 회장을 맡아 미주 한인들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자 송현호 아주대 명예교수
송현호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아주대 인문대학장, 절강대 교환교수, 서울대 객원연구원, 연변대 교환교수, 중앙민족대 석학교수, 길림대(주해) 체류교수, 남부대 석좌교수, 문학평론가협회 국제이사, 한국현대문학회 부회장, 한중인문학회 회장, 한국현대소설학회 회장, 한국학진흥사업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9년 세계인명사전 Marquis Who’s Who에 등재되었다. 현재 아주대 명예교수, 한국현대소설학회 명예회장, 한중인문학회 명예회장, 안휘재경대 석좌교수, 절강월수외대 석좌교수, 무한대 한국학진흥사업단 수석연구원, 포토맥포럼 한국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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