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 달구며 분노, 비아냥 쏟아져
지난 10월 19일 뉴튜브 채널에 출연해 밝힌 이상경 국토교통부 제1차관의 발언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대출 규제로 인해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실수요자를 향해 "돈을 모아 집값이 안정될 때 사면 된다", "어차피 기회는 돌아오게 돼 있다"고 말한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언뜻 들으면, '현명한 재테크 조언'처럼 들릴 수 있다. 무리한 빚을 내기보다는 정부의 안정화 노력을 믿고 종잣돈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발언이 터져 나온 순간, 분노와 비아냥이 쏟아져 나온 배경에는 정책 당국이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서민의 절망 방정식'이 있다.
우선 근로 소득의 절망적인 역전 현상
국토교통부 차관의 발언이 현실과 괴리되는 첫 번째 지점은 '돈 모으는 속도'와 '집값 오르는 속도' 간의 압도적인 격차다. 서울의 평균 아파트 가격이 직장인 평균 연봉의 수십 배에 달하는 시대에, 월급을 꼬박 모아 집을 사라는 조언은 판타지에 가깝다.
집값이 1년에 수천만 원씩 오르는 동안, 서민의 연봉은 물가 상승률을 겨우 따라잡거나 오히려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소득이 쌓인 후 사면 된다'는 말은, '소득이 쌓이는 속도보다 집값이 더 빨리 도망치는 속도'를 경험한 무주택자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많은 이들은 과거 정부를 믿고 기다렸다가 '벼락 거지'가 된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다.
더욱 국민적 공분을 산 것은 이 차관의 개인 자산 현황이다. 배우자 명의로 경기도 분당의 30억 원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10억 원이 넘는 임대 관련 채무를 신고했다. 이미 막대한 자산을 바탕으로 레버리지를 활용해 자가를 소유하고 있는 고위 공직자가, 정작 현금이 부족한 서민들에게 "대출 없이 돈을 모아 사거나, 집값이 떨어지길 기다리라"고 조언하는 것은 '내로남불'의 전형으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이번 발언은 대출 규제로 '기회'마저 박탈당한 실수요자의 처지 대신, 규제와 상관없이 현금 동원력이 있는 소수의 시각에 갇혀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서민의 주거 사다리를 올리기 위한 '필요한 빚(생애 최초 대출 등)'과 '투기성 빚'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금주의적이고 엘리트적인 인식을 방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차피 기회는 돌아오게 돼 있다"는 발언은 부동산 시장이 자연적으로 조정되기를 바라는 정책 당국의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주거 안정의 기회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섬세한 정책 설계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지, 막연히 시장에 기댄 채 '돌아오기를 기다리라'고 방치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주택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대출만 조이는 방식으로는 투기는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꿈은 더욱 멀어지게 된다.
정책 당국자들은 더 이상 통계나 원론적인 경제 논리에만 기대지 말고, 수십 년간 월급을 모아도 내 집 한 채 가지기 힘든 보통 사람들의 절망 방정식을 직시해야 한다.
공직자의 말 한마디가 수많은 국민에게 희망 혹은 좌절을 안겨줄 수 있음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할 때다.
진정으로 주거 안정을 이루고 싶다면, 현금 부자가 아닌 '근로 소득자도 합리적인 대출을 통해 주거 사다리를 탈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진정한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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