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평생을 인간과 삶,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탐구한 사상가였다. 그런데 그가 남긴 숱한 문학작품과 사상적 저술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일화가 있다. 바로 ‘여인숙의 빨간 가방’ 이야기다.

여행길에 들른 여인숙에서 톨스토이는 병든 여인숙 주인의 여섯 살 난 딸을 만났다. 소녀는 그의 빨간 가방을 갖고 싶어 눈물까지 흘리며 졸랐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주겠다”는 약속으로 아이의 바람을 뒤로 미뤘다. 며칠 뒤 돌아왔을 때, 아이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아이의 무덤 앞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톨스토이는 깊은 회한 속에 깨달았다.

“사랑은 미루지 말라.”

이 짧지만 강렬한 교훈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종종 ‘나중에’, ‘조금 더 시간이 있을 때’, ‘형편이 나아지면’이라는 이유로 사랑과 배려를 미룬다. 하지만 사랑은 미루는 순간 그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유한하며, 내일이 반드시 주어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그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곤 한다

사랑은 거창한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관심, 손을 내미는 배려 속에서도 사랑은 살아 숨 쉰다. 그러나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그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곤 한다. 마치 빨간 가방 하나가 한 아이에게는 생명의 불씨가 될 수 있었듯, 작은 사랑의 실천이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랑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는 때가 있다. 꽃이 피는 계절이 따로 있듯, 사랑도 지금 이 순간 실천하지 않으면 더 이상 피어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언제나 “지금 여기서” 해야 한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비록 행복이 없다 해도 인간은 사랑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멀리 있지 않고, 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곁에 있는 이에게 건네는 미소, 지금 내 앞의 사람을 향한 친절, 지금 실천하는 작디작은 나눔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다.

톨스토이가 소녀의 묘비에 새겼던 말처럼, 사랑은 결코 미뤄서는 안 된다. 오늘 베풀지 못한 사랑은 내일 다시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그것이 삶을 후회 없이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사랑할 수 있을 때, 죽도록 사랑해야 하지 아니한가.

<박상희 한국농어촌희망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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