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에 말하기를 군자는 보이지 않는 데서 경계하고, 들리지 않는 데서 두려워한다. 즉, 남이 보지 않아도, 남이 듣지 않아도 스스로 삼가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진정한 도덕의 시작이라는 뜻인데 현대 세상은 ‘빨리빨리’를 넘어 ‘즉시즉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음식은 3분이면 완성되고, 감정은 3초 만에 소모된다. 기다림은 시대착오로 취급받고, 혼자 있음은 결핍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인간은 느릴 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만난다. 고요함이 철학이라면, 느림은 예술이다.

Ⅰ. 속도의 감옥에 갇힌 인간
현대인은 스스로 바쁘게 가둔다. “시간이 없어”라며 허둥대지만, 정작 시간을 도둑질한 범인은 본인이다. 스마트폰 알림은 마치 디지털 간수처럼, 틈만 나면 우리의 집중을 빼앗는다. 느림은 이런 감옥의 문을 여는 탈출 예술이다. 재밌게 말하면, 요즘 사람은 바쁜 게 아니라 ‘바쁜 척하느라 바쁘다.’ 정작 멈춰서 생각할 시간이 사라졌다.

Ⅱ. 느림은 낭비가 아니라 사치스러운 품격
느리다는 건 게으른 게 아니다. 와인을 천천히 음미하듯, 삶도 천천히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빠름의 미학은 효율을 낳지만, 느림의 미학은 의미를 낳는다. 현대인은 커피를 마시며 일하고, 식사하며 메일을 확인한다. 이쯤 되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이메일이 위장에 들어가는지 헷갈린다. 느림은 이런 ‘속도의 혼선’을 바로잡는 안테나다.

Ⅲ. 혼자 있음의 기술, 고독과 고립의 차이
많은 사람이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한다. 그러나 고독은 고립이 아니다. 고립은 끊김이지만, 고독은 연결이다. 세상과 잠시 떨어져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마음의 시선으로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다. 해학적으로 말하자면, 요즘 사람들은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둘이 있으면 피곤하다. 결국 고요와 느림을 모르는 사람은, 어디서도 편하지 않다.

Ⅳ. 혼자 있는 시공간은 정신의 정원
혼자 있는 시간은 잡초를 뽑는 정원 가꾸기와 같다. 바쁜 일상에서 자라난 불안, 비교, 조급함의 잡초를 뽑아내야 마음의 꽃이 핀다. 이때 필요한 건 화려한 취미도, 여행도 아니다. 그저 차 한 잔, 노트 한 권, 혹은 조용한 산책이면 충분하다. 느림은 물리적 속도가 아니라, 정신의 깊이다. 고요히 걷는 한 걸음 속에 사유의 우주가 숨어 있다.

Ⅴ. 느림의 유머, 세상은 그렇게 급하지 않다.
한 철학자는 말했다. “하루를 서두르면 인생은 늦는다.” 웃지만 슬픈 말이지만 진리다. 우리는 늘 ‘지금 아니면 안 된다’라며 스스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의 불안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인다. 나무는 제 속도로 자라고, 강물은 도도히 흐른다. 우리의 삶은 천천히 변화하는데, 사회는 늘 ‘속도전’만 벌인다. 느림의 미학이 사라진 곳에 정서의 깊이도 사라진다.

Ⅵ. 느림의 결론, 마음의 시계를 되돌려라.

느림은 시대의 역행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복원이다. 빨리 성장한 문명은 이제 느림을 배우지 않으면 무너진다. 혼자 있는 시공간은 그 복원의 첫걸음이다. 우리는 세상의 소음 대신 자신의 내면적 언어를 들어야 한다.

결국, 여유로운 느림은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인간의 품격이며, 정신의 체온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고요 속에서, 당신의 삶이 비로소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되찾을 것이다.

필자 고무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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