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극장으로 옮겨간 호러 방탈출 게임…'8번 출구'
가족의 비밀로 묻혀야 했던 여성들의 죽음…영화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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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번 출구' 속 한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 8번 출구 =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가득한 지하철과 짜증스러운 소음, 출구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
도시 직장인들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일 이 모습이 그대로 방탈출의 무대가 된다.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조차 네뷸라이저(연무식 흡입기)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천식이 심한 주인공 '헤매는 남자'(니노미야 카즈나리 분)의 숨소리를 들으며 관객은 어느새 방탈출 게임의 플레이어에 이입한다.
타임 루프에 갇혀 미로처럼 반복되는 지하철 통로를 함께 걷고, 유일한 탈출구인 '8번 출구'를 찾을 단서를 스크린 속에서 눈으로 좇는다.
카와무라 겐키 감독의 '8번 출구'는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 호러 영화다.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며 개봉 전부터 주목받았고, 국내에서는 30회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 패션 섹션을 통해 처음 관객들을 만났다.
2023년 출시된 원작 게임은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190만회를 돌파하며 인기를 끈 일인칭 3D 워킹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처럼, 반복되는 무한루프 속 이상 현상을 찾아낼 때마다 유일한 탈출구인 8번 출구에 점차 가까워지는 규칙은 게임과 영화 모두 동일하다.
영화는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지하도의 출구를 찾아 헤매는 남자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을 맞춘다.
게임과 달리 영화에선 관객이 직접 과제 수행을 할 수는 없지만, 일상적인 배경 속에서 낯선 게임 규칙에 적응해가는 공포와 압박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찍찍거리는 쥐 소리,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 등 다른 환경에서라면 공포스럽지 않을 효과음들도 몰입된 게임 환경에선 두려움을 배가시킨다.
22일 개봉. 95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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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양양' 속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양양 =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여대생 주연(양주연)은 술에 취한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다 자신에게 40여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연은 왜 그동안 고모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았을까. 고모는 왜 죽음을 택했고, 그의 죽음은 왜 가족의 비밀이 됐을까.
수없이 떠오르는 물음에 해답을 찾기 위해 주연은 할머니가 보관하던 고모 지영의 사진들을 단서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을 찾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주연은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에 가로막혔던 장녀이자 글쓰기를 좋아하던 젊은이였던 지영의 삶을 마주한다.
양주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양양'은 자신에게 고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주연이 고모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색깔이 더 많은 크레파스 같은, 좋은 것들은 당연한 듯 남동생에게 양보해야 했던 지영의 어린 시절에 주연은 세대를 뛰어넘어 여성으로서의 공감을 느낀다.
가족들 사이에서조차 비밀이 되어야만 했던 지영의 죽음은 '교제 살인'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수없이 반복되어 온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를 묵직하게 불러낸다.
'양양'은 제11회 부다페스트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3회 부에노스아이레스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유럽 관객들을 만났고, 제1회 과딕스무지개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22일 개봉. 78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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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양양' 속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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