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사용량, OECD 평균의 1.7배 수준
“내성균 확산은 국가 의료체계 흔드는 시한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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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남용 (PG)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서울=조중동e뉴스) 이현주 기자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위를 기록했다.
‘감기에도 항생제’라는 인식이 여전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국민 건강에 대한 심각한 경고 신호”라며 강력한 제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청이 13일 공개한 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인구 1천 명당 하루 31.8 DID(Defined Daily Doses per 1,000 inhabitants per day)에 달했다.
이는 OECD 평균(18.9 DID)을 훨씬 웃도는 수치로, 2022년 25.7 DID보다도 20% 이상 증가한 것이다.

■ “항생제 남용, 국민 생명 위협하는 수준”

전문가들은 항생제 오남용이 ‘슈퍼박테리아’의 확산을 부추겨 의료체계를 뒤흔드는 심각한 위기라고 경고한다.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되면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아 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합병증이나 사망률이 급증할 수 있다.

감염내과 전문의 김성은 교수(가명)는 “항생제가 남용되면 단순 감염도 치명적인 질병으로 바뀔 수 있다”며 “이대로라면 10년 내에 현재의 항생제가 무력화되는 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019년, 항생제 내성을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10대 보건 위기’ 중 하나로 지정했다.
영국 보건청은 2050년이 되면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가 매년 1,0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정부 시범사업은 효과…“하지만 인력이 없다”

질병관리청은 이런 문제의식 속에 지난해 11월부터 ‘항생제 적정 사용 관리(ASP)’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병원마다 전문 인력을 배치해 항생제 처방의 필요성을 검증하고, 감염균 검사 결과에 따라 보다 적절한 약제로 교체하는 시스템이다.

시범사업 결과는 긍정적이다.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조사에 따르면, 사업에 참여한 병원은 100%가 ‘제한항생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비참여 병원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미생물 검사 결과를 반영해 항생제를 교체하는 사례도 참여 병원에서 59.2%로 나타나, 비참여 병원(10% 미만)을 압도했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났다.
300병상 이상 병원 중 절반 이상(53.6%)이 인력 부족을 이유로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감염관리 전문의와 임상약사, 미생물 검사 인력 확보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항생제 남용은 습관이 아닌 사회적 구조의 문제”

전문가들은 항생제 오남용을 단순히 환자의 인식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짧은 진료 시간, 불필요한 처방을 유도하는 의료보험 구조, 병원의 인력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정책연구원 관계자는 “항생제 남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산물”이라며 “제도적 관리와 교육, 그리고 의료현장의 인력 충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항생제는 생명을 살리는 칼, 잘못 쓰면 생명을 해친다”

질병관리청 임승관 청장은 “항생제의 올바른 사용은 감염에 취약한 노인과 어린이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며
“ASP 사업이 모든 병원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항생제는 생명을 살리는 칼이지만, 잘못 쓰면 생명을 해치는 독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선택이, 미래 세대의 생존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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