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주변에서 ‘비선(秘線)’이 등장할 때마다 대한민국 정치는 같은 악몽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공식 직책도, 책임도 없는 인물이나 설사 공식 직함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권력의 일부처럼 군림하는 순간, 국정의 균형은 무너지고 공정한 의사결정은 흔들렸다.
최근 김현지 대통령 제1부속실장을 둘러싼 논란 역시 그 익숙한 그림자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도대체 김현지가 누구길래 이토록 대한민국 정치권의 논란에 중심에 섰을까?
작금 여,야 정치인들의 김현지 논란에 대한 해석은 서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탓에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역대 정권마다 비선 실세는 있었던게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의 홍인길라인, 김대중 정부의 ‘동교동 사단’, 노무현 정부의 문고리 핵심들, 이명박 정부의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정윤회, 윤석열 정권의 김건희까지...
이름은 달라도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대통령의 신뢰’라는 방패 뒤에 감춰진 권력 사유화다. 그들의 末路는 예외 없이 비극이었다. 대통령은 예외없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고립되거나 탄핵당했고, 국정은 마비되거나 크게 혼란에 빠졌다.
이번 논란이 아직 초기 단계라 하더라도, 국민이 느끼는 불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게 여의도 정치권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秘線 논란은 단지 특정 인물의 일탈이 아니라, 권력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인사와 정보, 결정이 비공식 루트를 통해 오갈 때, 민주적 통제는 사라진다. ‘믿을 만한 사람’ 한 명이 국정을 왜곡시키는 것은 지나간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측근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다. 진정한 리더십은 개인적 신뢰를 넘어 제도적 투명성 위에서 세워진다. 역대 비선 실세들의 末路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번에도 그 교훈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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