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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은행 역대 노동조합 위원장 모임


한국 경제는 지금 복합적인 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정치적 리더십은 실종되었고, 사회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갈등에 매몰되어 있다. 마치 방향도 모른 채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레밍(lemming)처럼, 서로를 향한 꽹과리 소리만 요란할 뿐 실질적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적 소음이 아니라, 그 소음이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에 있어 시간의 지연은 곧 회복의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우는 독(毒)이 된다.

누적된 부채, 경제의 발목을 잡다

현재 국제결제은행(BIS)의 국가별 총부채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의 국가총부채는 6,372조 원으로 지난해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2,543조 원의 약 2.5배에 달한다. 이 같은 국가총부채는 △기업 부채 2,861조 원 △가계 부채 2,299조 원 △정부 부채 1,212조 원으로 나뉜다. 각각의 부채만으로도 일반인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로 이 구조는 위험한 불균형을 내포한다. 가계는 빚 상환에 허덕여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 여력을 상실했으며, 정부는 정책 대응력이 크게 제약된다. 부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경제 주체 모두의 행동 반경을 제한하는 족쇄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 상태에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덮친다면 충격은 배가된다. 일본이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30년 가까운 장기침체에 빠진 사례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역시 ‘자산 거품 붕괴 → 소비·투자 위축 → 고용 악화 → 부채 불이행’이라는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내수와 수출, 이중의 막다른 길목에 막혀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은 수출 주도형 구조 덕분에 위기 극복의 동력을 찾았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정반대다. 내수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져 소비와 투자가 살아날 기미가 없고, 글로벌 경제 환경도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특히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 모든 수입품에 15% 부과와 대미 투자 금액 3,500억 달러 선불 폭격을 가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수출 구조를 직격할 것이다.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 주력 산업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대규모 실업과 생산 차질을 피하기 어렵다. 내수는 이미 침체, 수출은 봉쇄될 수 있는 이중의 막다른 길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정치적 리더십의 실종, 사회적 분열의 심화

경제적 위기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정치적 무기력이다. 위기 국면에서는 국정의 일관된 방향과 국민적 결집이 절실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정반대다.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 대립은 본질적 해법을 가로막고, 정치권은 비난과 정쟁에 몰두할 뿐 실질적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정약용이 무능한 학자들을 두고 "밥벌레"라 질타했던 말은 오늘날 무책임한 정치권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는 있는가

그렇다면 한국 경제가 오늘날 진퇴양난에 처한 현실을 극복하고, 발전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우선,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는 현실인식과 과감한 대처가 필요하다.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위기다. 따라서 위기 탈출을 위한 돌파구에 대한 다음 세가지 혁신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첫째, 우리 경제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편과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부채 구조의 전환, 내수 기반의 강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대응이 동시에 추진되지 않으면, 한국은 ‘퍼펙트 스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둘째, 정치적 리더십의 복원이 절실하다. 경제 위기는 기술적 해법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쟁의 승자가 아니라, 국가를 살리는 ‘책임 있는 중재자’다.

셋째, 국민적 연대가 필요하다. 위기는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다. 모두가 ‘밥값’을 해야 할 시간이다.

순간의 선택이 역사를 만든다

역사는 언제나 위기의 순간에 선택을 요구했다. 선택을 미루거나 잘못하면, 국가는 걷잡을 수 없는 추락을 맞는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구조적 위기와 정치적 무능이 겹친 ‘퍼펙트 스톰’의 초입에 서 있다. 그러나 위기는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한국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다.

순간의 선택이 역사를 만든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결단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 경제가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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