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e뉴스] 2025년 10월 8일 — 제579돌 한글날(10월 9일)을 하루 앞두고, 국왕의 절박함이 담긴 최초의 한글 공문서 '선조국문유서(宣祖國文諭書)'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이 유서에 담긴 한글의 소통 가치를 조명하며, 한글의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한 책 **'한글문화지식 100'**을 펴냈다.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 쓴 임금의 한글 편지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다각도로 조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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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선조국문유서'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팩트체크 1: 위기의 군주, 왜 한글을 택했나?

1593년 9월, 임진왜란으로 수도 한양을 내주고 의주로 피란 간 선조는 교서 한 통을 쓴다. 한문이 아닌 순 한글로 작성된 이 교서는 어보(御寶) '유서지보(諭書之寶)'가 찍힌, 현존하는 최초의 한글 공문서다. 국가유산포털과 관련 연구에 따르면, 보물 제951호로 지정된 이 유서의 내용은 파격적이다.

"왜적을 잡아 나오거나 왜적이 하는 일을 자세히 알아 나오거나 포로가 된 사람을 많이 데리고 나오는 등의 공이 있으면 양민과 천민을 막론하고 벼슬도 시킬 것이다."

이는 단순히 흩어진 백성을 다독이는 수준을 넘어, 신분 제도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약속이었다. 선조가 당대 지배층의 문자였던 한문 대신 한글을 택한 것은, 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한자를 모르는 평민, 천민까지 모두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 수단이 바로 한글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부산일보 등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김해성을 지키던 권탁 장군이 이 유서를 들고 적진에 들어가 포로로 잡혀 있던 백성 100여 명을 구출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유서는 현재 안동 권씨 판결사공파 종친회에서 기탁하여 경남 김해한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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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훈민정음'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팩트체크 2: 한글의 모든 것, '한글문화지식 100'에 담기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선조국문유서'와 같이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한글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한글문화지식 100'을 발간했다.

이 책은 국어학, 국문학, 서지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약 5년간 진행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훈민정음' 창제부터 '말모이 원고'에 이르기까지,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킨 인물, 단체, 사건 등 핵심 주제 100가지를 선정해 흥미롭게 풀어냈다.

주요 내용:

"조선 시대에도 지금처럼 '가나다라…' 순으로 한글을 배웠을까?"

"조선 시대 역관은 어떻게 외국어를 공부했을까?"

초성, 중성, 종성의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글자는 총 몇 개인가?

강정원 국립한글박물관장은 발간사를 통해 "한글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한글의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더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해당 도서는 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전자책 형태로 확인할 수 있으며, 박물관 SNS 이벤트 등을 통해 실물 책자 증정 행사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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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말모이 원고'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팩트체크 3: 한글, 광화문에서 세계로… '2025 한글한마당'

한글날을 기념하는 축제도 대규모로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2025 한글한마당'**이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개최된다.

기사에 언급된 국립한글박물관의 행사는 이 축제의 일환으로, 10월 11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 기간 '한글문화 산업전'에서는 한글을 소재로 한 패션, 공예품 등 다양한 문화상품이 소개되며,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한글 작품도 전시되어 한글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한다.

'한글한마당'은 서울뿐만 아니라 경북,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지자체 및 국어문화원 주도로 열려 전 국민과 세계인이 함께 한글의 가치를 되새기는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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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본문 내용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종합 분석 및 전망

'선조국문유서'는 한글이 단순한 문자를 넘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왕과 백성을 하나로 묶는 **'소통과 통합의 도구'**였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신분의 벽을 허물고 인재를 구하려 했던 선조의 실용주의적 선택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1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증명한다.

국립한글박물관의 '한글문화지식 100' 발간과 '한글한마당' 축제는 이러한 한글의 역사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한글이 K-컬처의 확산과 함께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오늘날, 그 안에 담긴 소통, 실용, 통합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기념을 넘어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한글날을 맞아, 박물관이나 서점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우리 곁에 항상 있었지만 그 깊이를 잊고 지냈던 한글의 놀라운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432년 전 위기의 왕이 백성에게 건넸던 간절한 소통의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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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표지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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