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야시장 속 새싹같은 아이의 성장…'왼손잡이 소녀'
쩌우스칭 감독·션 베이커 제작…내년 아카데미 대만 출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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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왼손잡이 소녀' 포스터 [더쿱디스트리뷰션·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는 꿈과 환상의 세계, 디즈니월드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있는 낙후된 모텔촌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수작이다.
모텔촌의 화사한 보랏빛 건물들은 디즈니랜드를 찾는 관광객들에겐 아름다운 풍경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다소 불안한 환경이다. 션 베이커 감독은 그 안에서 생명력을 발산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애정을 담아 그렸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쩌우스칭 감독의 '왼손잡이 소녀'는 대만 야시장 버전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쩌우스칭 감독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비롯해 '테이크 아웃'(2004), '탠저린'(2015) 등 션 베이커 감독의 대표작 제작에 참여한 오랜 파트너다. '왼손잡이 소녀'에선 션 베이커 감독이 공동각본, 제작, 편집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2010년 대만에서 한달 동안 머물며 '왼손잡이 소녀'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6살 소녀의 시선에서 야시장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유사한 느낌이 들지만, 대만 야시장 고유의 분위기와 문화적인 요소는 쩌우스칭 감독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왼손잡이 소녀'는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2025 간(Gan) 재단 배급상을 받았고, 내년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의 대만 공식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국내에서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처음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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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왼손잡이 소녀' 기자회견 (부산=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션 베이커 프로듀서(왼쪽부터), 쩌우스칭 감독, 배우 니나 예, 마쉬유안, 황텅웨이가 23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왼손잡이 소녀'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9.23 ryousanta@yna.co.kr
똑똑하고 상냥한 6살 소녀 이징(니냐 예 분)은 타이베이 야시장에서 엄마, 언니와 함께 산다.
엄마와 언니는 이징을 무척 사랑하지만, 근근이 살아가는 지친 생활인이어서, 하루 종일 재잘대는 이징의 말에 다정하게 대꾸할 여력이 없을 때가 많다.
엄마와 언니가 나누는 심각한 대화에 끼어들 때마다 번번이 핀잔을 듣지만, 이징은 씩씩하게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상인들과 인사하고, 나름대로 놀거리를 찾아낸다.
평화롭던 이징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 건 왼손잡이인 이징을 못마땅하게 본 할아버지가 '왼손은 악마의 손이니 쓰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부터다.
왼손으로 자연스럽게 하던 일들이 나쁜 짓처럼 느껴진 이징에겐 근거 없는 죄책감이 뿌리내린다. 따뜻하고 서민적인 공간이던 야시장은 흔들리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알아채 줄 어른이 하나도 없는 거친 공간이 된다.
엄마와 언니도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에 짓눌리며 갈등이 깊어지지만, 영웅의 등장이나 뜻밖의 행운 같은 게 없이도 셋은 일상에서 결국 균형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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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왼손잡이 소녀' 포스터 [더쿱디스트리뷰션·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 속 주요 배경인 야시장은 세트가 아니라 실제 야시장이고,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도 배우가 아닌 실제 시장 상인들이다.
영화 촬영 중인 것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현실에 가까운 모습을 담기 위해 모든 촬영은 아이폰만 사용해 진행했다. 영화 속에서 이징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국숫집에 실제 손님들이 와서 음식을 먹고 나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션 베이커 감독은 "대만 관객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진솔한 모습으로, 전 세계 관객에게는 참신한 시선으로 보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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