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녀 끝에 매달려져 있는 풍경에 달린 물고기의 모양
가을바람이 사찰을 스치고 지나갈 때, 처마 끝 풍경은 은은한 소리를 내며 울린다. 그 끝에는 어김없이 작은 물고기 하나가 매달려 있다. 스쳐보면 단순한 장식 같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 간직된 깊은 상징이 숨어 있다.
먼저 물고기의 형상은 하늘과 맞닿은 풍경을 바다로 바꾼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린 물고기는 곧 푸른 바다에서 헤엄치는 생명으로 읽힌다. 불은 물 앞에서 힘을 잃듯, 풍부한 물의 기운을 담은 물고기 풍경은 화마(火魔)로부터 나무로 지어진 절집을 보호하려는 상징이다. 단순한 미학적 장식이 아니라, 불교적 지혜가 담긴 기도의 장치인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 존재다. 잠을 잘 때도,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수행자 또한 늘 깨어 있어야 함을 일깨운다.
삶이란 순간순간이 번뇌와 무명(無明)에 물드는 과정이지만, 그 속에서도 눈을 뜨고 자신을 성찰하며 도를 닦으라는 가르침이 풍경에 담겨 있다. 바람이 불어 풍경이 울릴 때마다 “눈을 떠라, 깨어 있어라”는 무언의 법문이 우리 가슴에 전해지는 것이다.
풍경 끝에 매달린 작은 물고기는 그래서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사찰을 지키는 수호의 상징이자, 수행자를 깨우는 법구(法具)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울려 퍼지는 청아한 소리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묻는다. 나는 지금 깨어 있는가, 아니면 무심히 눈을 감고 있는가.
절 추녀 끝의 물고기는 작은 몸짓으로 큰 울림을 전한다. 그 울림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눈을 떠라. 물고기처럼 깨어 있어라. 그러면 너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하리라.”
바람과 함께 울리는 풍경 소리는 곧 우리 마음을 깨우는 법음(法音)이다. 사찰에 들어선 이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심히 스치는 바람조차 수행의 길로 인도하는 지혜로운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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