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참 빠르다. 사람보다 스마트폰이 더 똑똑하고,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말을 더 잘한다. 밥상머리에서 ‘AI 스피커’가 “오늘 날씨는 맑음입니다”라며 부모님과 대화하고, 손주 사진은 구글 포토가 먼저 알아서 정리한다.

기술은 발전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옛날엔 효(孝)라고 하면, 부모님 말씀에 무조건 “예, 알겠습니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먹으면 버릇없으며, 목소리를 높이면 가문의 수치였다. 그러나 요즘은 부모님이 자식 눈치를 본다. “얘야, 카톡 읽었으면 답 좀 해라.” 그 답장 하나가 옛날 제사상 차리는 정성보다 귀하다.

■ 효도, 이제는 ‘생활형 서비스’가 되다.
세상이 변했다. 대가족은 사라지고, 부모님은 아파트 한켠에서 조용히 혼밥을 하신다. 자식은 회사, 아이, 대출, 스트레스에 치여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효도가 사라진 게 아니라, 업데이트가 늦어진 것뿐이다.

요즘의 효는 집에서 밥상 차려드리는 대신, 병원비 자동이체 걸어드리고, 스마트워치로 건강 체크해드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옛날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게 효였지만, 요즘은 부모님이 편히 사시게 하는 게 효다.

그러니 요양원에 모셨다고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좋은 시설에서 음악 듣고, 친구들과 수다 떨고, 미술치료 받으며 웃는 부모의 얼굴, 그게 바로 오늘날의 효다. ‘함께 사는 효’에서 ‘행복하게 사는 효’로, 시대가 변했을 뿐 정신은 그대로다.

■ AI가 대신 못하는 일
AI 로봇이 밥 차려주고, 약 챙겨드리고, 심지어 말벗까지 해주는 시대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로봇이라도, 부모의 손을 잡으며 “엄마, 사랑해요” 한마디 하는 그 순간의 떨림을 대신할 순 없다.

AI는 부모의 혈압은 측정할 수 있지만, 외로움의 혈압은 모른다. AI는 부모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오늘따라 네가 보고 싶구나”라는 마음의 데이터를 읽지 못한다. 기계가 효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의 무심함을 자각하게 만드는 거울은 될 수 있다. AI도 부모님을 챙기는데, 나는 왜 카톡 답장을 안 했지? 이 깨달음만으로도 기술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 사랑의 철학, 그리고 인간의 품격
이제 효는 단순히 ‘부모를 섬기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사랑의 철학으로 변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의 선택을 믿고, 자식은 부모의 세월을 존중하는 것. “우리 엄마는 옛날 분이라서 몰라요.” 이 말 속에는 세대의 벽이 아니라, 공감의 부재가 숨어 있다. 효는 의무가 아니라 대화다. “엄마, 이건 이렇게 하면 더 편해요.” “그래, 너도 힘들겠구나.” 이 짧은 대화 속에서 세대는 연결되고, 효는 살아 숨 쉰다.

■ AI 시대, 마지막 남은 인간의 기술
AI는 언젠가 인간의 일을 모두 대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효만큼은 인간이 끝까지 붙들어야 할 기술이다. 왜냐하면 효는 ‘감정의 언어’이자 ‘사랑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눈빛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고, 따뜻한 한마디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정, 그것이 인간이 기계와 구별되는 이유다.

AI가 부모의 손을 대신 잡을 수는 있어도, 그 손의 온도까지 복제할 순 없다. 효는 과거의 관습이 아니라, 미래의 품격이다. 부모의 미소 한 줄기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따뜻함을 배우고, 그 사랑을 다시 자식에게 건네줄 때, 효는 세대를 넘어 흐르는 ‘감정의 전기’가 된다.

기계가 아무리 진화해도, 그 전류는 인간의 마음에서만 흐른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효는 “울엄마 아부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필자 고무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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