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성묘하는 필자(중앙)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고창의 선산에 들렀다. 비록 필자는 교회의 장로로서 신앙의 뿌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곳은 부모님과 조상님들이 잠들어 계신 자리였다. 묘 앞에 서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지고, 애틋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신앙과 전통이 서로 어긋나는 듯 보일지 모르나, 효심과 뿌리를 기리는 정서는 오히려 더 깊은 인간적 울림을 주는 법이다.

오늘날 성묘의 의미는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고향을 찾는 발걸음이 줄었고, 성묘를 단지 명절의 형식적 의례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묘를 찾아 풀을 베고 절을 올리며 조상과의 끈을 확인하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는 “성묘는 낡은 풍습”이라며 아예 의미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성묘는 단순히 무덤을 찾아가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근원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부모와 조상을 잊지 않고, 그들의 삶과 희생을 기리는 행위다. 이는 종교의 틀을 넘어선 인간 보편의 가치이며, 공동체적 기억을 이어주는 끈이다. 뿌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무가 결국 말라버리듯, 조상과의 연결을 잊은 사회는 정체성과 품위를 잃기 쉽다. 더구나 성묘는 가족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매개였다. 함께 묘소를 찾아가며 형제자매가 만나고, 자녀들이 선조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한 가문이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장이 되었다. 그 속에서 효의 가치가 전해졌고, 인간다움의 온기가 이어졌다.

필자는 교회장로이지만, 조상님 산소 앞에서 느낀 감정은 결코 신앙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의 말씀과 다르지 않았다. 성묘는 미신이 아니라 인간의 본분, 곧 부모와 조상을 향한 감사와 경외의 표현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것은 과거의 전통을 무조건 답습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묘를 통해 확인하는 뿌리와 감사의 마음이다. 그것이야말로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정서적 중심이다.

조상의 묘 앞에서 눈시울이 젖는 것은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순간이다. 성묘의 가치는 사라져야 할 낡은 풍습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불러내야 할 우리의 정신적 자산이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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