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통계가 보여준 숫자는 우리를 멈춰 세운다. 10대 자살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7.9명으로 4년 새 34%나 증가했고, 고등학교 중퇴자가 1만8천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단순한 통계 이상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일이 ‘예외’가 아닌 사회적 위험 신호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다. 그 근본에는 개인의 약점이 아니라 교육과 사회 구조의 병리(病理)가 있다. 아래는 문제의 핵심을 정리하고,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개선방안을 논리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문제점 — 어디가 아픈가

1. 입시 중심의 평가 체계와 경쟁 구조
수능과 내신이 인생 경로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현실은 ‘학습’보다 ‘점수’를 목표로 하는 교육을 낳았다. 학생은 시험 성적을 위한 주입식 학습에 내몰리고, 실패는 곧 사회적 불이익으로 직결되며 정신적 부담으로 축적된다.

2. 정신건강 지원의 구조적 부족
학교 내 전문상담교사와 심리치료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교사들은 상담·정서 지원을 맡아야 하지만 전문성과 시간 모두 부족하다.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개입할 체계가 미비하다.

3. 대안 경로와 전환 시스템의 단절
자퇴 학생을 위한 검정고시, 직업교육, 멘토링 등 연계 체계가 약하고, 복지·교육 행정은 분절되어 있어 탈학교 청소년이 ‘사각지대’에 놓인다.

4. 성과 중심의 학교 문화와 교원 업무 과중
학교는 진학 실적으로 평가되고, 교사들은 행정·입시 경쟁 압박 속에서 본연의 교육적 돌봄을 수행하기 어렵다. 학교 내 공동체 기능이 약화되었다.

5. 가정·사회적 기대와 경제 불안
부모 세대의 과도한 기대, 불안정한 노동시장의 현실은 학생에게 ‘성공 불안’을 전가한다. 실패의 대안이 보이지 않으면 좌절은 치명적이다.

6. 디지털·사회관계의 압력
소셜미디어와 사이버 괴롭힘, 비교 문화는 학생들의 자존감과 정서 회복력을 떨어뜨린다. 외부에서의 상처는 학교 내 문제와 결합해 취약성을 증폭시킨다.

개선방안 —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처방

아래 제안은 ‘예방·대응·전환’의 세 축으로 나누어 구체화한다.

1) 예방(학교 교육과정·평가의 전환)

평가 다원화와 교육과정 개편: 기억력·암기 중심 수업에서 토론·프로젝트·탐구 중심 수업으로 전환해 학습 동기와 자기효능감을 회복한다. 수행평가와 포트폴리오 비중을 높여 학생의 다양한 재능을 인정해야 한다.

학교수업의 탄력성 확대: 진로탐색·정서교육 시간을 법제화하여 정규시간 내에 학생 개인의 관심과 속도에 맞춘 학습을 보장한다.

2) 대응(정신건강 지원의 제도화)

전문상담인력 대폭 확충: 중·고등학교 최소 1명 이상의 전문상담교사 배치(학교 규모에 따라 추가 배치)와 지역 단위 심리치료 네트워크 구축. 상담 인력의 양성·처우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교사 대상 위험신호 교육 의무화: 모든 교사에게 학생의 자해·자살 위험신호를 판별하고 초기 개입을 할 수 있는 실무 교육을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학교-지역 연계 응급체계: 응급심리상담 핫라인과 의료기관 연계 프로토콜을 마련해 위기 상황에 즉각 개입할 수 있도록 한다.

3) 전환(자퇴·중퇴 이후의 통합 지원)

원스톱 통합 플랫폼 구축: 검정고시, 직업훈련, 멘토링, 심리상담, 노동·주거·복지 지원을 한 번에 연결하는 국가·지자체 통합 플랫폼과 지역 허브를 설치한다. 복지·교육·고용 부처의 협업을 법제화해 행정적 칸막이를 제거한다.

대안교육과 직업훈련의 질적 강화: 대안학교·직업훈련기관에 대한 인증·재정지원 제도를 정비해 사회적 인정과 고용 연계성을 높인다.

멘토링·기업 연계 프로그램 활성화: 지역사회·기업과 연계한 인턴십·멘토링을 통해 학업중단 청소년의 사회적 복귀 경로를 실질적으로 제공한다.

4) 학교 문화와 제도적 변화

입시성과 중심 평가의 공적 감시: 학교·교육청의 진학 실적 평가가 교육의 목적을 왜곡하지 않도록 지표를 다변화하고, 돌봄·정서적 성과를 포함한 평가지표를 도입한다.

교사 업무 경감과 전문성 회복: 불필요한 행정업무 축소로 교사의 교수·상담 시간을 확보하고, 전문적 연수와 심리적 안전망을 제공한다.

5) 가족·지역사회 참여 및 사회적 인식 개선

부모 교육과 지역 커뮤니티 강화: 부모 대상 심리교육·양육코칭을 제공하고, 지역 커뮤니티가 학교와 협력해 학생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분담한다.

자살·정신건강 낙인 해소 캠페인: 도움구하기가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용기임을 알리는 공공 캠페인을 장기적으로 전개한다.

6) 데이터 기반의 모니터링과 책임성

성과지표와 공개 보고: 청소년 자살률·중퇴율·상담접근성 등 핵심지표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정책의 효과를 평가해 예산과 제도를 조정한다.

파일럿→확산의 단계적 실행: 지역 단위 파일럿 사업으로 실효성을 입증한 뒤 국가적 확산을 추진하되, 실무자·수혜자 의견을 반영하는 피드백 루프를 유지한다.

결론 — 교육은 정책이자 윤리다

청소년의 자살과 중퇴는 더 이상 ‘교육계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이는 사회 전체의 안전망이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해결책도 교육부서만의 책임으로 끝나지 않고 보건·복지·고용·지역사회가 함께 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성적 캠페인이 아니라 제도적 개혁과 자원 배분의 전환,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를 잃지 않겠다’는 사회적 결단이다. 교육이 사람을 살리는 울타리가 되지 못할 때, 그 사회는 스스로 미래를 축소한다. 우리는 그 길을 선택할 여유가 없다.

류수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제7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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