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 속의 나
아침에 눈을 떠 거울 속에서 낯선 사람이 나를 바라본다. 눈빛은 피곤했고, 어깨에는 어제의 근심이 매달려 있다. 분명 내 얼굴인데, 왠지 모르게 낯설다. 그 순간 오래된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짧은 물음은 인류가 태초부터 던져왔지만, 아직 아무도 끝내 답하지 못한 수수께끼다. 우리는 평생 ‘나’로 살아가지만 정작 ‘나’를 가장 모르고 산다.

▣ 이름과 꼬리표의 굴레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름과 꼬리표를 붙인다. 학생, 부모, 직장인, 혹은 실패자. 사람들은 그 이름에 맞추어 표정과 말투를 바꾸고, 그렇게 주어진 역할에 자신을 맞춘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나답게’가 아니라 ‘보이게’ 살아간다.

그러다 거울 속 얼굴을 마주하며 묻는다. “이 얼굴, 언제 이렇게 변했을까.” 그제야 자신에게 되묻는다.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가?”

▣ 철학보다 어려운 자기 인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이 가장 어렵다. 세상의 기준을 벗고 자신을 직면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어렵고 두려워하는 근본적 통찰이다. 사람들은 회의실의 문제는 잘 풀지만,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머뭇거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을 모른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기를 모르면 남과 비교하며 산다. 타인의 성취가 내 결핍이 되고, 남의 속도가 내 초조함이 된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알고 있다. “남의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것을

▣ ‘나’를 찾는 여정
인생은 결국 ‘나 찾기’의 여정이다. 어린 시절엔 부모가 나를 대신 정의했고, 청년기에는 사회가 답을 대신 써 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세상이 소란스러운데 내 마음이 고요하다면, 그때가 진짜 ‘나’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명예와 평가, 타인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고 있는가?”

이 물음은 철학의 장식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세우는 실천의 언어다. ‘나’를 모르면 남의 인생을 흉내 내며 산다. 회사에서는 상사의 인생을, 집에서는 부모의 인생을, SNS에서는 남의 행복을 복제한다. 그 사이에서 내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 인간만이 가진 지능
오늘의 인간은 인공지능보다 더 기계적으로 산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하며 스스로를 개선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감정의 파도에 휘둘린다. ‘좋아요’ 하나에 들뜨고, 비난의 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우리는 세상의 피드백에 의해 작동하는 감정의 기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성찰은 인간만이 가진 지능이며, ‘의문을 품는 능력’은 어떤 AI도 모방할 수 없다.

▣ 양심의 거울과 변화의 용기
‘나는 누구인가’의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남을 대하는 태도, 사소한 선택, 그리고 양심의 결 안에 숨어 있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가, 자신을 용서할 줄 아는가, 옳음을 선택할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나’의 실체다. 결국 이 질문은 철학이 아니라 양심의 거울이다.

남을 탓하던 사람이 “문제의 근원은 내 안에 있었다”라고 깨닫는 순간, 그는 한 단계 성장한다. ‘나’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고, 내일의 나는 또 달라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다. 이것이 무엇인가? 질문이 바로 인간의 나침반이다.

▣ 자기 물음이 남긴 빛
하루의 끝,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조용히 말해보자. “나는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오늘도 나를 알아가고 있다.” 그 한마디가 진정한 자기 인식의 시작이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인생의 철학이자 구원이다. 그 질문을 잃지 않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물음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나다운 인간이 된다.

고무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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