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은 광주학살사건과 이윤상 유괴사건을 모티브로 「벌레 이야기」를 창작하였다. 두 사건은 전두환의 정의사회 구현의 허구성과 관련이 있고, 가해자의 진솔한 사과가 없었던 점이나 피해자가 용서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점이 대단히 유사하다.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봄 유신헌법 철폐와 국정의 민간 이양 요구, 여야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 합의에 위기감을 느끼고 5월 17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의 해산과 무장군인들의 대학가 투입에 이어 정치인들을 체포하였다. 5월 18일 학생들의 저항에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고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피의 학살을 자행하였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훼손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전두환은 정의사회 구현을 내세우며 간선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취임 이후 사과는 없었다.
80년 11월 경서중학교 1학년 이윤상이 납치되었다. 유괴범은 거액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무리한 요구에 부담을 느낀 이윤상의 부모는 경찰에 신고한다. 공개수사로 전환되면서 대통령 당선자 전두환은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다. 성명으로 인기가 급상승했으나 사건은 미궁에 빠져들었다. 이듬해 유괴범이 잡혔다. 이윤상의 어머니는 스트레스성 암으로 사망했고, 전두환은 정의사회 구현 운운하면서 유괴범의 사형을 집행시켰다.
「벌레 이야기」에서 광주 이야기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독자들이 광주 이야기임을 직감할 수 있도록 작가는 두 사건의 중첩되는 부분을 작품에 녹여내었다. 그는 평소 소설가는 소설로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설은 하나의 사회적 징후로 인식되어야 하는 반성적 장르다. ‘소설이 한 시대와 사회의 징후를 드러내는 것이 되고자 할 때 그것은 무엇무엇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기보다 그 소설 자체가 그 징후의 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초등학교 4학년 장애아 알암이 어느 날 유괴된다. 알암 엄마는 자식의 무사 귀가를 염원하고, 김 집사의 권유로 기독교 신자가 되어 하나님께 기도한다. 유괴 80일 만에 알암은 재개발 건물의 지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범인은 알암이 다니던 주산 학원 원장이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긴 알암 엄마는 신앙심을 버리고 범인에 대한 원한과 저주로 나날을 보낸다. 그녀는 아이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김 집사의 설득으로 다시 하나님을 믿고 범인을 용서하기로 한다. 그녀는 살해범을 만나기 위해 교도소로 간다. 살해범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며 평온하게 그녀와 마주한다. 그녀는 절망을 느낀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를 했단 말인가? 그녀는 고통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중, 살해범이 사형 집행을 앞두고 남긴 유언, 자신은 너무나 평온하며 유족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라는 말을 라디오를 통해 듣는다. 그녀는 절망하여 약을 먹고 자살을 한다.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 유한한 인간 존재를 소설에 등장시킨 것은 작가의 어린 시절의 전짓불 체험과 타자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광주민주화운동 등이 이청준의 삶과 작품 세계에 준 영향은 넓고도 크다. 전두환은 가해자였음에도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하여 국민의 공분을 샀고, 오랜 기간에 걸친 망언은 ‘전라도 것들’이라는 말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득권 의식과 타자 논리가 작용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폭력 앞에서 무기력하고 나약할 수밖에 없는 알암 엄마, 인간적인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금수와 같은 유괴범, 알암 엄마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직된 계율만을 강조하는 김 집사에게 장애아 알암과 그의 엄마는 벌레와 같은 존재다. 범인이 밝혀지고 오히려 알암 엄마는 복수의 표적을 잃어버린다. 범행을 자백한 순간부터 범인은 알암 엄마의 보복을 피해 당국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전두환은 언제 어디서나 보호를 받았고, 망언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 사실 피해자 앞에는 진솔한 사과 없이 용서하기 어려운 세계가 놓여 있었다.
「벌레이야기」 속의 극복할 수 없는 비극적 세계인식은 1980년대의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에 토대를 두고 있다. 원인 모를 갑작스러운 폭력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 존재의 한계를 작가는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청준은 왜 1980년의 문제를 1985년에 다시 재현해냈을까? 피해자가 용서하고 화해를 한 것이 아님에도 일부 언론과 종교인들의 호도로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망각 속으로 파묻혀 들어가는 과거를 작가가 재현하여 당대의 징후를 드러내고 미래의 전망을 제시한 셈이다. 작가는 가해자의 진솔한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가 있어야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광주학살사건은 전두환 정부에서는 ‘광주사태’로, 노태우 정부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김영삼 정부에서는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5·18민주화운동’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가해자의 진솔한 사과는 없었고, 용서하고 화해할 여건도 조성되지 않았다. 가해자에 동조하는 세력들은 아직도 증오와 색깔론을 의도적으로 흘리고 있다.

송현호 아주대 명예교수



송현호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아주대 인문대학장, 인문과학연구소장, 절강대 교환교수, 서울대 객원연구원, 연변대 교환교수, 중앙민족대 석학교수, 길림대(주해)체류교수, 남부대 석좌교수, 문학평론가협회 국제이사, 학술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현대문학회 부회장, 한중인문학회 회장, 한국현대소설학회 회장, 한국학진흥사업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9년 세계인명사전 Marquis Who’s Who에 등재되었다. 현재 아주대 명예교수, 한국현대소설학회 명예회장, 한중인문학회 명예회장, 안휘재경대 석좌교수, 절강월수외대 석좌교수, 무한대 한국학진흥사업단 수석연구원, 포토맥포럼 한국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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