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문정후 "전 운좋은 만화가…남은 생엔 무협만 그릴게요"
'용비불패'부터 '고수'까지 30년째 한국 무협만화 대표 작가

"독자 댓글 늘 신경 쓰죠…'아수라' 판타지·무협 비율도 '2:8'로 줄이는 중"

(부천=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만화계에 워낙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은데, 저같이 평범한 사람이 작가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신기합니다. 항상 제 능력 이상의 호응을 받는 것 같아요. 운이 좋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독자들 사이에서 '만신'(만화의 신)이라고 불리는 문정후 작가는 최근 경기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이뤄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겸손하게 입을 뗐다.

그저 운이 좋다고만 표현하기엔 만화가 문정후는 국내 만화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다.

1996년 류기운(글) 작가와 함께 '용비불패'를 만화잡지에 연재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2015년에는 '고수'를 통해 당시에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무협 웹툰의 터를 닦았다.

올해는 웹툰 '아수라'로 부천만화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로써 류기운·문정후 작가는 국내 3대 만화상이라고 불리는 부천만화대상, 오늘의 우리만화 상, 대한민국콘텐츠대상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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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용비불패' [네이버 시리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문 작가는 고(故) 박봉성(1949∼2005) 만화가의 화실에서 만화를 배웠고, 이곳에서 류기운 작가와 만났다. 이후 30년째 글·그림 작가로 짝을 이뤄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류 작가와의 첫 만남에 대해 "박 선생님 문하에서 친구로 만났다. 그림도 잘 그리고, 습작도 너무 재밌게 만들더라"며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남은 세월 동안 계속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두 작가는 인기 출판만화 작가였다가 성공적으로 인기 웹툰 작가로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문 작가는 "만화 잡지에서 웹툰으로 넘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며 "일본에서도 조금씩 연재했고 여러 방식으로 연재처를 구했는데, 국내 만화시장이 축소되면서 고민이 많았다"고 돌이켰다.

그는 이어 "후배 작가들이 닦아놓은 길(웹툰)에 편승해 같이 열매를 수확하는 것 같아 항상 감사하면서도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과거 웹툰 업계에서 무협 장르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고수'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면서 무협 웹툰의 수요가 다시금 증명됐다.

문 작가는 "네이버웹툰에 처음 '고수'를 연재할 때만 하더라도 무협은 거의 사라지는 장르 중 하나였다"며 "('고수') 이후로는 무협 장르가 부활해서 많은 작품이 나오고 있어 개인적으로 뿌듯하다"고 말했다.

'고수'를 2021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최근에는 애니메이션화 소식도 전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일본 대형 기업 도에이(東映) 애니메이션이 참여해 화제가 됐다.

그는 "아직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며 "최근에 캐릭터 디자인을 보내줬고, 제가 애니메이션 전문가도 아닌 만큼 의견을 많이 내기보다는 한 명의 시청자로서 애니 영상을 즐겨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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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고수' [네이버웹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에 부천만화대상을 받은 '아수라'도 무협 만화다. 무협 세계관에 골렘, 샐러맨더 등 서양 판타지 요소도 섞은 것이 특징이다.

예전에 미완으로 끝낸 만화 '괴협전'의 명맥을 이은 것이라고 했다.

문 작가는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고, '괴협전'을 사정상 완결을 짓지 못했는데 그런 (무협과 다른 요소가 섞인) 세계관을 좀 이어서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독자들의 호응을 기억하며 '아수라'를 내놨지만, 예상과 다른 반응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독자분들은 세계관이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더라"며 "판타지면 판타지, 무협이면 무협이어야 하는데 섞여서 재미가 덜하고, 너무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다"고 말했다.

독자 댓글을 꼼꼼히 챙겨본다는 그는 "원래는 '아수라' 속 판타지와 무협의 비율이 '4대 6'이었다면 이제는 '2대 8' 정도로 줄였다. 얼마나 더 조절해야 할지도 계속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아수라'는 처음에는 장편으로 기획했지만, 이를 줄여 120∼140화 분량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는 "최대한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펼쳐놓은 세계관을 잘 마무리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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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아수라' [네이버 시리즈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용비불패'부터 '고수', '아수라'까지 문 작가의 대표작은 모두 무협만화다. 그간 학습만화, 서양 판타지 만화로 외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것은 무협 장르였다.

독자들을 위해 남은 생은 무협 만화만 그리겠다고도 다짐했다.

"오래 지켜본 독자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무협이 아닌 다른 작품을 한다고 할 때 어색해하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원하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 욕심은 차치하고 이번 생에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무협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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