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뒤집는 이야기들…박민정 단편집 '전교생의 사랑'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수록…"훌륭한 사회파 소설"
X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민지는 1990년대 아역 배우로 활약하면서 권위 있는 영화상을 받으며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지만, 라이벌인 세리가 급부상하자 연예계를 떠난다.
승승장구하던 세리는 스무 살에 스캔들이 터져 배우 활동을 접고 연출가가 되기 위한 길을 걷는다. 그런 세리를 바라보며 민지는 씁쓸해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아역으로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열다섯 살의 가장 빛났던 세리와 스무 살의 타락한 세리가 서로 상반된 모습으로 콜라주된 사진만 돌아다녔다."(단편소설 '전교생의 사랑'에서)
최근 발간된 소설가 박민정의 단편집 '전교생의 사랑'(문학동네) 표제작 줄거리다. 표제작은 작년 제47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작품으로, 1990년대 아역 배우로 주목받았던 민지와 세리의 이야기다.
그간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인물과 소재를 통해 우리 시대 사회의 분위기를 담아낸 작가는 표제작에서도 이른 나이에 은퇴한 배우들을 통해 사회가 얼마나 쉽게 유명인의 삶을 가십거리로 소비하는지 보여준다.
민지는 세리와의 재회를 계기로 나무위키가 세리를 어떻게 서술하는지 찾아보게 되는데, 한 사람의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평가하고 확인된 바 없는 풍문까지 언급한 것을 보고 착잡한 기분에 빠진다.
작가가 '바비의 분위기' 이후 5년 만에 펴낸 이 소설집에는 2018∼2024년 발표한 아홉 개의 단편이 실렸다.
'나의 사촌 리사', '나는 지금 빛나고 있어요', '하루미, 봄',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네 단편은 연작으로, 한때 대중에 사랑받던 일본 삼인조 걸그룹 메가미가 해체된 이후 멤버들의 일상을 다룬다.
일본 최대 기획사 소속 아이돌로 화려한 연예계에 몸담았다가 평범한 길을 걷게 된 인물들이 이른바 '실패한 연예인'이라는 주변의 시선과 달리 성실하게 하루를 일구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처럼 작가는 편견의 대상이 되기 쉬운 인물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펼치면서 독자의 편향된 생각을 뒤집는다. 이를 통해 대중의 편견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단편적인지 지적한다.
소설가 이미상은 추천사에서 "사회에 대한 진지한 탐구 정신, 울지 않고 참기에 더 선명히 느껴지는 인물들의 상처, 깔보기 쉬운 유형의 인간을 복잡하게 바라보는 지성과 관대함. 훌륭한 사회파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 확인해보시라. 그거 다 여기 있으니"라고 썼다.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민정은 장편 '미스 플라이트', '백년해로외전', '오수와 암실', 단편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바비의 분위기' 등을 펴냈다.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모습을 반추하는 소설로 호평받으며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316쪽.
jae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