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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 기증한 홍영자 씨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임시정부 최초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 기증한 홍영자 씨가 지난달 2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울=조중동e뉴스=편집국] 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편찬한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 중국과 미국을 거쳐 100여 년의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 귀중한 사료를 기증한 이는 재미동포 홍영자(83) 씨다.
지난해 5월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남편 고(故) 이순원 교수가 소장하던 사료집을 기증한 홍 씨는 "남편이 생전에 받은 소중한 선물을 이제야 제자리를 찾게 해드린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광복 80주년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이 열리고 있는 덕수궁 돈덕전 전시장에서 만난 홍 씨는 1년 4개월 만에 다시 마주한 사료집을 보며 "우리 땅에서 제자리를 찾았으면 한다는 남편의 바람을 실천하게 돼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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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 전시된 '한일관계사료집'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오는 12일까지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리고 있는 광복 80주년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에 전시된 '한일관계사료집'. 2025. 10. 5.
총 4권으로 구성된 '한일관계사료집'은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일본의 침략사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귀중한 자료다. 당시 100질이 인쇄됐지만, 완질로 전해지는 것은 독립기념관과 미국 컬럼비아대학 도서관 소장본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춘원 이광수가 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회 주임으로 참여해 서문을 남겨 사료적 가치를 더한다.
이 사료집이 이순원 교수에게 전해진 것은 1970년대 초 중국에서였다. 뮬런버그대 교수였던 남편이 학생들과 중국을 방문했을 때, 옌볜 지역 동포들에게 성경책 10여 권을 전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선물이었다. 홍 씨는 "당시 중국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미국 시민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부부는 이 책을 소중히 간직하며 언젠가 조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뜻을 품어왔다.
홍 씨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맥을 같이한다. 아홉 살 무렵까지 평양에 살았던 그는 6·25전쟁 당시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란했다. 그는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아이들이 많다며 떡을 나눠주던 이름 모를 분들의 따뜻함을 지금도 기억한다"며 "아버지가 깡통으로 지어주신 소금밥이 꿀맛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음식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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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전시장 찾은 홍영자 씨 (서울=연합뉴스) 홍영자(가운데) 씨와 딸 이혜정(왼쪽) 씨, 기증에 도움을 준 조무제(오른쪽) 목사가 지난달 24일 서울 덕수궁에 전시된 '한일관계사료집'을 둘러본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간 홍 씨는 남편 이순원 교수와 함께 펜실베이니아주에 정착했다. 이민 초기, 미국인 가정집에서 설거지와 청소 등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지만, 특유의 사업 감각으로 기프트카드숍을 운영하며 자수성가했다.
부부는 한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남편 이 교수는 리하이밸리 한인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을 지내며 한인 이민자 공동체의 기반을 마련했다. 홍 씨 역시 한인교회 창립 멤버로서 초기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고, 10년 넘게 한글학교를 운영하며 차세대 교육에 힘썼다.
결혼 60주년을 사흘 앞두고 2023년 남편을 떠나보낸 홍 씨는 "남편이 없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그가 남긴 신앙과 학문적 유산은 제 삶의 등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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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고(故)이순원(왼쪽) 교수와 함께한 홍영자 씨. (서울=연합뉴스) 고(故)이순원 교수는 정치학 연구와 강의에 평생을 바쳤으며, 리하이밸리 한인회를 조직해 초대회장을 지내며 한인 이민자 공동체의 기반을 마련했다. [홍영자 씨 제공]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조국을 향한 애정 어린 메시지를 남겼다.
"대한민국은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우리 것을 소중히 지키며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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