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롯데카드가 롯데그룹 아니라고?…회사는 팔려도 간판은 남는다
금호타이어·OB맥주·대우건설 등 주인 바뀌어도 회사명 유지

인지도·충성고객 등 고려…"대체로 매각가에 상표권 값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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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롯데카드 본사 모습[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최근 롯데카드에서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온라인 등에서는 롯데카드가 롯데그룹 계열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관심을 끌었다. 이름에 롯데가 들어가는 데다 롯데백화점을 비롯한 롯데 계열사에서 판촉 활동을 많이 해 당연히 롯데그룹 소속일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카드는 이미 수년 전에 다른 기업에 매각된 상태로, 이름에서만 '롯데'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새 소유주에게 매각된 뒤에도 기존 사명을 그대로 쓰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기존 사명이 인지도가 더 높거나 기존 회사에 대한 충성 고객이 있을 때 주로 이런 식으로 매각 거래가 이뤄진다.

이렇게 되면 법적으로는 무관한 회사지만 소비자들 머릿속에서는 한 기업으로 묶이게 되는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이번 롯데카드 사태 같은 일이 발생하면 소비자 혼란과 함께 같은 그룹명을 사용하는 다른 회사의 신뢰도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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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하준 오비맥주 사장 [오비맥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롯데그룹, 롯데카드 6년 전 매각…롯데쇼핑은 여전히 20% 지분 보유

롯데카드는 이미 6년 전 롯데그룹을 떠났다. 롯데그룹은 2017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금융·보험업 계열사 보유가 불가능해지자 2019년 MBK파트너스에 카드사를 매각했다. 이후 MBK파트너스 측은 대중 인지도와 충성 고객 등을 고려해 카드사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다.

문제는 이미 롯데그룹 계열이 아님에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롯데그룹사에 불똥이 튀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보다 모르는 분들이 많다"면서 "내부에선 유무형 피해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롯데카드는 롯데그룹이 아닌가 봐요?", "저도 처음에는 롯데카드가 롯데 계열사인 줄 알고 그룹을 비난했어요" 등의 글을 볼 수 있다.

롯데그룹이 상표권에 따른 사용료를 받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롯데그룹도 비난을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용료는 받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카드의 경우 매각 당시 MBK파트너스가 대주주로 있는 동안은 '롯데' 브랜드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브랜드 사용 계약을 함께 체결했다"면서 "당시 매각가에 이런 부분이 반영돼 있을 수도 있으나 별도로 (브랜드) 사용료를 받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롯데그룹과 롯데카드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롯데쇼핑은 여전히 롯데카드의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그룹측은 이를 두고 경영 참여가 아닌 협업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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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타이어의 옛 CI(왼쪽)와 현 CI(오른쪽) [금호타이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금호타이어·OB맥주도 이름만 유지…소유는 동종업계 외국 회사

국내 주류업계 대표 업체인 OB(오비)맥주도 두산그룹이 아닌 벨기에 맥주회사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 인베브) 소유다.

버드와이저, 코로나, 스텔라 아르투아, 호가든 등의 글로벌 브랜드를 거느린 AB인베브가 1998년 두산그룹으로부터 오비맥주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배하준 현 오비맥주 대표도 벨기에 출신으로, 본명은 벤 베르하르트다.

AB인베브는 2009년 지분 전체를 사모펀드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에 다시 매각했으나 5년 뒤인 2014년 이를 되찾아왔다. KKR에 매각 당시 5년 내 약정 금액에 되살 수 있는 조건을 걸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처럼 인수와 매각이 반복되는 동안에도 오비맥주라는 회사명은 물론 '카스'와 'OB라거' 등 기존 제품들도 상품명 변경 없이 계속 생산됐다.

사명이 이미 대표 주류업체로 각인된 데다 국민 브랜드 격으로 인식돼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식음료 사업을 정리하던 시기에 AB인베브가 사들였다"면서 "오비맥주라는 회사를 산 것이니 당연히 브랜드는 계속 쓸 수 있고, 모든 제품 브랜드를 다 쓸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해 매각가가 결정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난 여파로 2018년 해외 매각됐다. 새 주인은 중국 타이어업체인 더블스타다. 트럭·버스용 타이어 부문에 주력하는 더블스타는 당시 금호타이어 인수로 승용차용 타이어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더블스타도 이름을 바꾸는 대신 금호타이어라는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인수 당시 세계 타이어업계 순위(2016년 매출액 기준)에서 더블스타는 23위권(점유율 0.7%)으로, 14위였던 금호타이어(1.6%)보다 낮아 금호타이어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도 "더블스타가 금호타이어보다 매출도 적지만, 인수한 이유도 금호타이어라는 이름을 업고 성장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호타이어는 사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데 따른 상표권료는 별도로 지불하지 않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 로고인 '윙마크'(날개 상징)에 대한 상표권료는 내고 있다.

빨간색 날개 모양인 이 윙마크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 등에도 표시돼 일반인에게 익숙하다.

금호타이어도 매각 전까지 기업이미지(CI)에 이 윙마크를 사용하다가 그룹에서 분리되면서 사용을 중지했으나 매각 당시 조건에 따라 사용료는 계속 내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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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금호타이어 신제품 설명회' 2019년 6월 중국 난징에서 열린 신제품 설명회에서 더블스타그룹 차이융썬 회장(가운데)과 당시 금호타이어 임원들이 행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사명이 신뢰도"…건설업계 기존 명칭 그대로 쓰는 일 흔해

건설업계에서도 매각 이후 사명을 그대로 쓰는 사례가 흔하다.

대우건설, 동부건설, 두산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대우건설은 대우그룹 해체 후 금호아시아나그룹, 산업은행을 거쳐 2021년 세 번째로 중흥건설에 인수됐다.

대우건설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사명을 유지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로 포함됐던 시절 기업 로고(CI)에 윙마크가 추가된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중흥건설도 인수 후 인지도와 브랜드 가치 등을 고려해 회사명은 물론 대우건설의 주택 브랜드인 '푸르지오'도 그대로 유지했다.

이렇게 이름을 계속 유지한 데는 상표권 분쟁이 없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우' 상표권은 대우그룹의 무역 부문인 대우인터내셔널이 갖고 있으나 대우건설은 그룹 해체 당시 대우인터내셔널에 영구 사용료를 내 상표권 문제를 해소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에 인수돼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사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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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연합뉴스 자료사진]

동부건설은 오히려 그룹이 매각 후 이름을 바꾼 사례다.

옛 동부그룹이 2016년 사모펀드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한 동부건설이 '동부' 상표권을 갖고 있어 반대로 나머지 그룹사가 상표권 사용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매각 직후에는 그룹사가 사용료를 내다가 이후 그룹사가 DB로 이름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두산건설은 두산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2021년 사모펀드인 큐캐피탈파트너스(큐캐피탈)로 대주주가 바뀌었으나 사명은 그대로다. 회사 측은 "매각 계약은 윗선에서 이뤄지니 당시 상표권과 관련해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표권을 가진) 그룹과 협의해 로열티 없이 '두산' 브랜드를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두산그룹이 여전히 상당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큐캐피탈은 제니스홀딩스를 통해 두산건설 지분 53.6%를 갖고 있지만 나머지 46.4%는 두산그룹의 두산에너빌러티가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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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건설 기업이미지(CI) [두산건설 제공]

건설사들은 영업상 주인이 바뀌었다고 기존 사명이나 아파트 브랜드명을 바꾸기가 어렵다.

영업활동에서 인지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국내 주택 사업은 아파트 브랜드 하나도 수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갑자기 브랜드나 기업명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특히 해외 영업을 많이 하는 곳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현지에서 인지도를 쌓고 발주처와 신뢰 관계도 형성한 상황이어서 이름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름이 바뀌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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