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중·러도 버거운데 일본까지…한국 외교 우군이 없다
스트롱맨 시대 속 日신임 총리까지 강경파…과거사 한일관계 변수로
'동맹에 더 까칠한' 미국·북중러는 밀착…한국 외교 운신의 폭 좁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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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태국 방콕 쇼핑몰에 전시된 러시모어산 캐리커처로 등장한 북미중러 정상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한국이 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를 이끄는 '스트롱맨'들과 험난한 외교전을 펼치는 형국에서 일본에서까지 강경파 지도자가 탄생하면서 주변 외교환경이 더 녹록지 않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이달 중순 총리에 취임할 것으로 전망되는 다카이치 사나에가 우익 성향의 역사관을 지니고 있는 데다 자신의 지지세력인 보수층을 의식해 과거사에서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다카이치 총재는 과거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독도 문제와 관련해 매파 인식을 보인 바 있다.
그가 총리로 취임한 이후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집한다면 비교적 온건 성향의 기시다 후미오·이시바 시게루 정권 시절 안정적으로 관리됐던 한일관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직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2013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마지막이었다.
다행히 다카이치 총재는 총리 취임 이후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부와 관련해 "적절히 판단하겠다"며 유보적 입장을 나타냈다. 총리 취임 이후인 오는 17∼19일 야스쿠니신사에서 열리는 추계 예대제 때 참배를 보류하는 쪽으로 논의 중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재의 강경 우파 성향과 맞물려 언제든 일본의 독도·과거사 도발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일관계는 물론 한미일 협력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칫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무자비한 관세 압박에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대응책을 협의하고, 국제 외교무대에서 북한 문제 등 주요 사안에 입장을 같이 하는 든든한 우군이던 일본과의 관계 설정에 새로운 고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새 총리와의 첫 한일정상회담을 오는 31일부터 이틀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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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 외교는 그렇지 않아도 다양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 한국 외교의 근간인 한미동맹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감지된다. 이는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에서도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27∼29일 일본에 방문하고 한국에는 29일부터 1박2일 머무는 방안을 한국 정부와 조율 중이다.
일본에는 2박3일 머물면서 한국에는 더 짧게 체류하고 31일부터 시작되는 APEC정상회의에도 불참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관세협상이 마무리된 일본과 달리 협상이 교착상태인 한국을 압박하는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은 보통 한일관계를 고려해 방문 기간도 특별한 게 없으면 비슷하게 맞추려고 한다"며 한국이 관세협상에서 버티고 있는 것에 대한 압박 성격이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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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정상 [타스=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북·중·러 연대가 가속하는 상황도 한국 외교에 닥친 고민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오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계기로 열릴 열병식에서 공고한 연대를 재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서는 리창 국무원 총리, 러시아에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참석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러 양국의 2인자와 함께 서는 것으로, 지난달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선 지 한 달 만에 3국의 고위 인사가 북한의 최신 무기 향연을 배경으로 연대를 과시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는 것도 모자라 북러 협력에 거리를 뒀던 중국마저 3각 권위주의 진영에 합류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한국으로선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 두 국가를 견인하는 과제에 난도가 더해진 셈이 됐다.
'적대적 국가'로 상정한 남한과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을 상대로 주변국 외교전을 통해 최종 목표인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안정을 끌어내야 하는 고차방정식이 더 복잡해진 것이다.
이달 말 APEC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해 방한하는 미국, 중국, 일본 정상과의 양자 회담이 한국 외교의 현주소와 미래를 가늠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실용외교를 본격화하고 외교 지평을 넓혀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 APEC 회의는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해준다"며 "상황이 녹록지는 않지만 (각국 정상과) 신뢰를 쌓고 소통할 계기를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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