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며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한 해 동안 흘린 땀방울을 결실로 거두는 시기, 우리는 조상들의 은혜를 기리고 가족과 정을 나누며 삶을 성찰한다. 이 시기에 문득 떠오르는 화두 하나, 바로 ‘천적(天敵)’이다.

천적은 생태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다. 쥐에게는 고양이가, 영양에게는 사자와 하이에나가 존재한다. 식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신비한 약효로 인간의 탐심을 자극해온 산삼은 초식동물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남기 위해 뇌두에서 쓴맛과 독성을 내뿜는다. 결국 천적이 있기에 생명은 긴장 속에서 진화하고, 생태계는 균형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천적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 보자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사실상 천적이 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은 스스로의 가장 큰 천적이다. 숱한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일관되게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적은 외부가 아니라 자기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나태함은 성장의 발목을 잡고, 두려움은 도전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불안과 의심은 기회를 놓치게 하고, 자기합리화는 후회라는 그림자를 남긴다. 세상의 온갖 외부의 적을 이겨내더라도,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삶의 진정한 승리는 없다.

한 심리학자는 “천적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부에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단순한 통찰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무겁게 다가온다.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 공동체까지 돌아보면, 결국 무너뜨리는 힘은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무너짐에서 비롯된다.

풍요와 나눔의 계절, 추석은 단순히 먹고 즐기는 명절이 아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싸워야 할 ‘진짜 천적’이 누구인지 성찰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적은 외부의 경쟁자도, 불운한 환경도 아닌 바로 내 안의 나태와 두려움일지 모른다.

올 추석, 차례상 앞에서 조상의 은혜를 기리며 이런 다짐을 해보자. “나는 나의 천적을 이기겠다. 내 안의 게으름과 불안을 넘어설 때 비로소 진정한 풍요가 내 삶에 깃든다.”

조영노 동일전력ㆍ이앤틱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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