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시간, 그 속에 담긴 역동적인 이야기…'한글 연대기'
최경봉 원광대 교수, 한글 탄생부터 오늘날까지 의미·맥락 조명
X
국보 '훈민정음'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세종실록 1446년 9월 29일 기사 중에서)
조선시대 집현전 학사였던 정인지(1396∼1478)는 새로운 문자를 이렇게 평가했다.
자음과 모음을 합쳐 28자. 이를 조합하면 간단하지만 요긴하고, 정밀하지만 소통이 쉽다는 설명이었다. 그것은 '훈민정음'(訓民正音) 즉, 한글이 가진 힘이었다.
당초 세종(재위 1418∼1450)은 한글이 백성을 가르치고,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다.
X
보물 '정조 한글어찰첩'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글 창제 6년 뒤인 1449년에 붙은 '벽보'가 그 예다.
세종실록 1449년 10월 5일 기사는 당시 정승 하연(1376∼1453)을 향해 '하 정승(河政丞)아, 또 공사(公事)를 망령되게 하지 말라'며 비난하는 한글 벽보가 붙었다고 전한다.
국어학자인 최경봉 원광대 교수는 이를 두고 "한글이 공론의 장(場)에 등장했다"며 "누구나 자기 생각을 공론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579돌 한글날을 맞아 최근 출간된 '한글 연대기'(돌베개)는 한글이 탄생하던 순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짚은 책이다.
X
보물 '말모이 원고'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글이 만들어진 뒤 어떻게 쓰이고,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그리고 한글을 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한글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찬찬히 보여준다.
저자인 최경봉 교수는 "'역사적 사실로서 한글의 모습'이라는 표면 구조와 '역사적 맥락 속 한글의 의미'라는 내면 구조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글에 얽힌 다양한 역사와 생생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책은 1894년 고종이 '법률·칙령은 모두 국문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을 혼용한다'고 선언한 이후 한글 글쓰기가 신문을 통해 확장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X
보물 '조선말 큰사전 원고'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양의 인명과 지명을 어떻게 기록할지를 놓고 머리를 맞댄 외래어 표기법 논의, 맞춤법과 각종 어문 규범을 제정하기까지의 과정 등 치열한 논쟁도 살펴볼 수 있다.
나라 안팎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글과 우리말을 지키고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 한 노력도 다룬다.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게 된 과정과 역사도 눈길을 끈다.
한글과 한국어를 연구해 온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는 추천사에서 "한글이라는 문자가 한국어를 얼마나 풍성하게 하고 그 언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가를 그려 낸 장대한 투쟁의 기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444쪽.
X
책 표지 이미지 [돌베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e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