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 빨간 지붕이 늘어선 아담한 마을이 있다. 이름하여 ‘독일마을’.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지난 세대가 흘린 눈물과 땀, 그리고 숭고한 헌신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역사적 장소다.
2001년, 김두관 군수 시절 삼동면 동천마을 문화예술촌에 30,000여 평 규모로 조성된 이 마을은, 독일에서 삶의 절반을 보낸 교포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마련된 터전이다. 바다와 산을 동시에 품은 천혜의 자연환경, 천연기념물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마을을 감싸고, 남해안 최고의 드라이브코스로 꼽히는 물미 해안도로가 이어져 있어 그 자체로도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곳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경관에 있지 않다. 그 뒤에 숨은 이야기에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 먹고 살기조차 버거웠던 시절. 우리의 젊은 여성들이 낯선 땅 독일로 파견되었다. 간호사와 광부로 흩어진 그들은 언어도, 음식도, 환경도 달라 하루하루가 고난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병원과 광산을 지켰고, 벌어들인 돈은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최소한의 용돈만 빼고는 모두 고향으로 송금했다. 그 돈으로 고향의 부모는 논밭을 일구었고, 동생들은 학비를 마련해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한 세대의 희생은 또 다른 세대의 희망이 되었다.
당사자들은 정작 자신을 위해 쓰지 못했다. 낯선 땅에서 외로움과 고단함을 삭이며 살아냈고, 결국에는 헌신과 성실을 인정받아 학문을 이어가거나, 새로운 가정을 꾸린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뒤편에 조용히 잊혀져갔다.
오늘날 남해 독일마을은 그런 ‘효녀 심청’들의 귀향지다. 독일에서 정년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돌아온 그들은, 햇살 따뜻한 남해 언덕에 보금자리를 틀고 여생을 보낸다. 북유럽의 긴 겨울 속 햇볕에 늘 그리움이 쌓였던 독일인 배우자들에게도, 이곳은 말 그대로 낙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마을을 바라보며 단순한 ‘이국적 풍경’을 소비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 붉은 지붕마다 배어 있는 눈물과 희생, 그리고 묵묵한 헌신을 기억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의 자식으로 태어나 오직 가족을 위해 청춘을 바치고, 결국 돌아와 고향의 언덕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기적이다.
버림받은 것보다 잊힌 것이 더 슬프다 한다. 남해 독일마을은 바로 그 잊힌 헌신을 다시 불러내는 공간이다. 관광객이 마을을 거닐며 독일식 건축의 이국적 정취에 감탄할 때, 그 이면에 깃든 효심과 눈물을 함께 기억한다면, 그 발걸음은 더욱 의미 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빨간 지붕 아래에서 다시 살아나는 이름 없는 효녀들의 서사. 그것이 바로 남해 독일마을이 가진 진정한 감동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시대의 기록이다.